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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통장' 실수 윤석열, 5년전 문재인·안철수 토론에 답있다

중앙일보

입력

왼쪽부터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출마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지난 26일 서울 상암동 채널A 스튜디오에서 열린 경선 3차 TV 토론에서 미리 준비한 소품을 보이며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왼쪽부터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출마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지난 26일 서울 상암동 채널A 스튜디오에서 열린 경선 3차 TV 토론에서 미리 준비한 소품을 보이며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17년 5·9 대선 직후 한국갤럽이 내놓은 ‘대통령 선거 사후 조사’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두 번째로 많은 답변이 ‘TV 토론 잘못함’(9%)이었다. ‘경험·역량 부족’(23%)이 압도적 1위이긴 했지만 TV 토론 능력을 꼽은 이들도 꽤 많았다.

그해 4월 23일 대선 후보 3차 토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제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입니까”라고 말한 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당시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달리던 안 후보는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3위(21.4%)로 대선을 마쳤다.

해당 한국갤럽 조사에선 ‘투표 후보 결정 시 참고한 매체’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답변은 ▶TV 토론 59% ▶신문·방송 보도 23% ▶인터넷 뉴스 17% 등의 순서였다.

2017년 대선 ‘안철수 뽑지 않은 이유’ 두 번째가 ‘토론 못함’

이를 잘 아는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경선 TV 토론에 사활을 걸고 있는 양상이다.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 신인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토론 경험이 많은 홍준표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 등은 토론에 자신감을 내비치곤 했다.

2차 컷오프(10월 8일)전 예정된 여섯 차례 토론 중 절반이 끝난 현재 상황은 어떨까.

야권에선 “윤석열 전 총장이 예상보다는 선방하고 있지만 디테일(세밀함)은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16일 첫 토론 때만 해도 홍준표 의원의 이른바 ‘조국 수홍’ 논란이 나오면서 윤 전 총장이 상대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지난 23일과 26일 토론에선 윤 전 총장이 디테일에서 허점을 드러내는 모습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내년 3·9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한 부동산 문제다. 지난 26일 토론회에서 하태경 의원이 “보통 재개발·재건축 하는데 몇 년 걸리는지 아세요”라고 묻자 윤석열 전 총장은 “한 4~5년 걸리죠”라고 답했고 하 의원은 곧바로 “한 10년 걸려요”라고 되받았다. 토론 이후 일부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해 “부동산 쪽에는 일반인보다 훨씬 모르는 분”이라는 내용의 비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3일 두 번째 토론 때도 “주택청약통장을 직접 만들어 본 적 있느냐”는 유승민 전 의원의 질문에 “저는 집이 없어서 만들어 보진 못했다”고 답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윤석열에 “디테일 부족” 평가…경쟁자들, 덫 놓듯 질문 공세

토론 경험이 많은 경쟁자들이 덫을 놓듯 질문하는 방식에 윤 전 총장이 고전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6일 토론 때 홍준표 의원이 “작계 5015 아시죠”라고 묻고 윤 전 총장이 “네”라고 답하자 “작계 5015가 발동이 되면 대통령으로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느냐”라고 재차 물어 당황시키는 방식이다. ‘작전계획 5015’는 유사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을 선제타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술을 담은 한·미 연합군의 전쟁 수행 계획이다. 머뭇거리던 윤 전 총장은 “글쎄요. 한 번 설명을 해주시죠”라고 공을 넘겼지만 홍 의원은 “아니, 작계 5015 아신다고 했잖아요”라고 재차 밀어붙였다.

같은 날에는 일종의 유도신문 방식을 동원해 시청자에게 모순적 답변처럼 보이게 하려는 전략도 눈에 띄었다.

▶유승민 전 의원=“(국정농단 재판 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45년을 구형했더라. 지금도 옳은 일이라 생각하나?”
▶윤석열 전 총장=“그건 양형 기준표대로 했다.”
▶유 전 의원=“박 전 대통령 사면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윤 전 총장=“이 정도 고생하셨으면 댁에 돌아가게 해드려야 한다 생각한다.”
▶유 전 의원=“45년을 (형을) 살아야 한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사면해야 한다는 거냐?”
▶윤 전 총장=“그건(구형은) 재판에서 그렇게 하는 거고, 사면은 정치적 문제 아니냐.”

세 차례 토론 결과에 대해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 당직자는 “토론에서 ‘뭐 아세요’라는 질문 방식은 썩 좋은 질문은 아니라고 본다”며 “반대로 윤 전 총장이 미리 준비를 해서 질문하면 상대방도 당황시킬 수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의 준비 안 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다고 본다”며 “단시일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선두 후보인 윤 전 총장이 다른 후보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게 꼭 나쁘지는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경우도 토론 능력 자체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도자로서의 안정감을 줬다”는 평가가 꽤 많았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왼쪽)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선 TV 토론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왼쪽)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선 TV 토론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토론 결과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진단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아직 8명이 함께 토론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를 하기엔 이르다”며 “본격적인 토론은 (2차 컷오프 이후) 4명이 남았을 때 가능할 것이고, 그때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한국정치학회장)는 “학계에선 초기에는 TV 토론의 선거 영향력이 크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논문에선 일반적으로는 큰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그러나 2017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의 ‘MB 아바타’처럼 (실수 등으로) 토론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나면 선거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국민 관심이 집중되는 본선에서 TV 토론회가 진행되면 그때는 파급력이 클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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