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대장동에서 전직 대법관·특별검사는 뭘 했을까요?

중앙일보

입력 2021.09.27 08:10

업데이트 2021.09.27 08:11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장동 개발 의혹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비좁잖아. 두고 봐. 앞으로 땅만 한 노다지가 없을 테니까.” -영화 ‘강남 1970’에서 민 마담(김지수 분), “땅이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하네요”라고 깡패 종대(이민호 분)가 말하자 부동산 개발 붐을 예상하며.

“이 과장, 이리 앉아 봐. 미스 김도 이리 와. 여기에 바둑돌이 다섯 개가 있어. 이건 항상 다섯 개야. 근데 여기서 내가 두 개를 갖고 와. 그런 네 건 몇 개야? 세 개지? 근데, 내가 하나를 뺏어와. 그럼 내 건 몇 개야? 세 개지? 네 건 몇 개야? 그러니까 넌 가만히 있었는데도 두 개가 된 거야, 그렇지? 이게 바로 자본주의라는 거야. 내가 안 뺏어오면 누군가가 와서 뺏어가게 돼 있다고. 이 하나를 뺏어오기 위해 나나 이 과장은 ○빠지게 노력해야 되는 거고, 미스 김은 ○나게 노력해야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영화 ‘이웃집 남자’에서 부동산 개발업자 상수(윤제문 분).

“지방 각지에서 돈 벌려고 올라온 아주 가난한 사람들을 거기다가 다 몰아넣어서 처음에는 먹고살기가 아주 개판 5분 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6공 때 분당 신도시 딱 만드니까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예? 지금은 천당 위에 분당 아닙니까? 우리 안남도 나중에 한 번 보십시오. 전국에서 돈 싸 들고 덤벼드는 부자 동네! 저 박성배가 이 손으로 꼭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영화 ‘아수라’에서 박성배 안남시장(황정민 분).

부동산 개발에 얽힌 인간들의 욕망을 그린 한국 영화의 대사입니다. 영화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개발업자, 투기꾼, 정보와 인허가권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는 권력자, 사업의 성사를 돕는 행정ㆍ법률 기술자, 각종 하수인들이 나옵니다.

영화보다 훨씬 더 영화 같은 현실이 있었음을 대장동 개발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이 현실의 드라마에는 지자체장 출신의 여권 유력 대선 주자, 전직 대법관ㆍ검찰총장ㆍ검사장이 등장합니다.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특별검사와 그의 딸, 그 전직 대통령의 ‘비선 실세’를 변호했던 검사 출신의 변호사,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의 야당 중진 의원과 그의 아들, 전직 기자들, 대기업 총수의 여동생도 등장인물입니다. 한국 영화감독과 작가의 상상력 스케일이 단번에 초라해집니다.  

개발 시행업자가 무엇 때문에 전직 대법관ㆍ검찰총장ㆍ특별검사, 검찰 고위직 출신의 유명 변호사, 야당 의원의 아들을 주변에 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적게는 억대의 돈이, 많게는 수십억원이 이들 각자에게 흘러갔습니다. 시행업자가 위세를 보이기 위해서, 예상되는 이권 분쟁에 방패로 쓰려고, 사업 성사를 도운 권력자가 입은 은혜를 대신 갚기 위해 등으로 언론이 그 이유를 의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이 무엇을 했는지, 각기 챙긴 돈은 어느 정도인지, 왜 이 사업에 개입하게 됐는지가 확인돼야 합니다. 사법의 공정성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법조 권력’의 탐욕과 횡포에 대한 원성도 드높습니다. “모두 다 도둑○”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검ㆍ경ㆍ공수처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 요구도 들끓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망설이는 이유가 뭔지도 궁금합니다.

영화 ‘대장동’의 핵심은 어쩌면 지금부터입니다. 한탕에 성공해서 깔끔하게 이익금 나누고 모두 웃으며 떠나는 스토리는 우리 정서에 잘 맞지 않습니다. ‘권선징악’의 익숙한 엔딩을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고전적 결말이 가슴에 쌓인 화를 조금이나마 풀어줍니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의 화천대유, 복마전이 따로 없다. 설립된 지 몇 년 안 된 부동산 시행사에 고위 법조인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법조기자 출신 대주주인 김모씨의 인맥이라는데, 억대 연봉을 주면서 이들을 옆에 둔 배경도, 또 이들이 응한 배경도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다. 고위 법조인들이 화천대유에 불나방처럼 꼬인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의 한 대목입니다. 그 내용을 보시죠.

곽상도·박영수·권순일, 대장동에 모여 단물 빤 것 아닌가
복마전 특혜 사업에 몰려든 고위 법조인들

화천대유 참가자, 인허가자 철저 수사해야

 곽상도 의원이 지난 4월 하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항의 방문하기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곽 의원은 26일 화천대유로부터 아들이 고액 퇴직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된 이후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연합뉴스]

곽상도 의원이 지난 4월 하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항의 방문하기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곽 의원은 26일 화천대유로부터 아들이 고액 퇴직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된 이후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연합뉴스]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의 화천대유, 복마전이 따로 없다. 설립된 지 몇 년도 안 된 부동산 시행사에 고위 법조인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법조기자 출신 대주주인 김모씨의 인맥이라는데, 억대 연봉을 주면서 이들을 옆에 둔 배경도, 또 이들이 응한 배경도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다. 고위 법조인들이 화천대유에 불나방처럼 꼬인 것이다.

곽상도 의원의 처신은 혀를 차게 한다. 아들이 ‘화천대유 1호 사원’이란 게 드러났을 때 “입사해 겨우 250만원의 월급을 받은 직원”이라고 주장했다.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후엔 “회사가 벌었으니까, 형편이 되니까 준 것 아니겠나” “이재명 경기지사가 그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작 아들에게 화천대유를 소개한 건 그였다. 그동안 그가 대통령 등 여권 인사 가족들에게 들이댔던 잣대를 떠올려보라. 납득이 되겠나. 국민의힘 탈당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후에 대해 “법관의 최고위직을 지낸 만큼 국민의 기대가 크다. 날카로운 비판을 의식하고 그런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로스쿨의 석좌교수로 ‘법조윤리’를 가르치면서 변호사 등록도 하지 않은 채 화천대유로부터 10개월간 월 15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그는 “화천대유가 어디에 투자했는지 모른다”고 주장했지만, 대법관 시절 대장동 관련 두 차례 판결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재명 지사를 살렸다’는 허위사실 공표 무죄 판결이다.

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의 소유주이자 대장동 개발사업의 주축인 남모 변호사 관련 법조인들의 행태는 더욱 기가 막히다. 대장동 불법 로비 사건으로 남 변호사가 기소됐을 때 수사 지휘 책임자(강찬우 전 검사장), 당시 변호인(박영수 전 특별검사)이 화천대유의 자문변호사와 고문이었다. 공영개발이란 외피를 둘렀다지만 본질적으론 같은 개발사업인데 어찌 피고인과 수사 검찰, 변호인이 한 배를 탈 수 있단 말인가. 보통사람들의 윤리의식도 이보다는 낫다.

대장동 의혹의 본질 자체는 단순하다. 원주민의 땅을 싼값에 수용해 비싸게 판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번 돈을 공공(1800억원)이 아닌 화천대유 등 민간(4000억원대)이 압도적으로 많이 가져갔다. 싼값에 수의계약한 땅으로 수천억원대 추가 이익도 보장됐다. 정상적이었다면 원주민(또는 입주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몇 명에게 몰아준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단군 이래 최대 특혜 사업’이 되도록 설계한 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 의혹에서 이재명 지사도 자유롭지 않다. 이 지사는 곽상도 의원을 향해 “운도 다 끝나가는 것 같다”고 했는데, 대장동 개발사업의 인허가권자는 바로 자신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특혜 구조를 알았어도 문제, 몰랐어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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