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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曰] 우리가 함께했던 ‘라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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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호 30면

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기자의 선친은 1960년대 공대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전자회사에 입사해 근무했다. 전자제품이 귀하던 그 시절 집에 전축이 있었다. 혹시 젊은 세대에게 전축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요즘 유행을 타고 있는 비닐(LP) 앨범을 걸어 음악을 듣는 기기를 예전에는 그렇게 불렀다. 선친은 여기저기 부품을 수소문해 직접 전축을 조립했다. 물론 턴테이블은 기성제품이었다. 선친이 조립한 건 전축의 앰프나 리시버였을 거다. 하루는 선친이 퇴근길에 앨범 한 장을 구해오셨다. 졸린 눈의 여자가수 얼굴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힌 재킷 위쪽에는 ‘심수봉과 나훈아의 아베크SONG!’이라고 찍혀 있었다.

앨범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앞면 첫 트랙에 바늘을 얹었다. 노래 제목은 ‘나는 여자이니까’, 작사·작곡에 최홍기라고 적혀 있었다. 전주에 이어 여자가수 목소리가 흘렀다. ‘사랑한다 말할까/사랑한다 말할까/아니야 아니야 말 못해/나는 여자이니까’. 여자가수가 한참 부른 뒤 남자가수 목소리가 뒤따른다. ‘사랑한다 말해요/좋아한다 말해요’. 여자가수가 곧바로 이어받는다. ‘아니야 아니야 난 싫어/나는 여자이니까’. 그 앨범이 발매된 1979년 당시 기자는 국민(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단 한 번 감상에 10살 소년의 영혼은 부서졌다.

함께한 예전 기억 떠올리면
별반 다르지 않은 모두의 추억

이 곡을 부른 남녀가수가 나훈아·심수봉이다. 작사·작곡자인 최홍기는 나훈아의 본명이다. 두 사람이 곡을 녹음한 건 1976년이다. 한 연회 자리에서 심수봉을 만난 나훈아는 그의 재능을 꿰뚫어 봤다. 직접 만든 이 곡을 주고 함께 녹음했다. 심수봉이 무명이었던 탓에 앨범까지 내지는 못했다.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본명인 심민경으로 출전한 심수봉은 직접 피아노를 치며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을 불렀다. 입상하지 못했지만, 이 노래는 크게 히트했다. 그 덕분에 3년 전 녹음했던 곡까지 빛을 봤다. 이 곡이 38세 청년의 영혼도 흔들었다는 건 훗날 깨달았다. 선친은 그전까지 즐겨듣던 ‘제임스 라스트 오케스트라’ 대신 ‘나는 여자이니까’를 밤낮으로 틀었다.

지난해 추석을 강타했던 나훈아와 ‘테스 형’ 열풍은 연휴 뒤에도 꽤 오래갔다. 올해는 심수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지난 19일 KBS2가 방송한 심수봉 TV 공연(‘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이 방송사 특집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평균 11.8%, 닐슨코리아)을 기록했다. 공연에서 심수봉은 ‘나는 여자이니까’를 29세 최정훈(그룹 ‘잔나비’ 보컬)과 함께 불렀다. 공연 막판에 부른 ‘백만 송이 장미’는 28세 아이유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한다. 최정훈·아이유의 한 세대 전인 기자는 그들 나이 때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떼창하다가 노래 맨 끝에 ‘여자는 더 그래’를 붙이며 놀았다.

심수봉·나훈아의 ‘나는 여자이니까’라는 곡은 선친과 기자가 공유하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아쇠다. 선친이 살아계셔서 이번 추석에 심수봉 TV 공연을 함께 시청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 이 노래를 심수봉이랑 나훈아가 같이 불렀는데 말이지”라고. 아마 몰랐을 거다. 자신의 ‘라떼’와 아들의 ‘라떼’가 거기서 거기였다는 걸. 선친이 항공사 파일럿이었던 친구가 있다. 친구는 선친과 함께했던 여행 얘기를 종종 한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친구 선친의 ‘라떼’도 그 친구의 ‘라떼’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비대면 시대라서 많은 부모와 자식이 얼굴도 맞대지 못한 채 명절을 보내야 했다. 이런 시절일수록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깨닫게 될 거다. 아버지, 어머니의 ‘라떼’가 결국 내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그 모든 게 우리가 함께했던 ‘라떼’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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