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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에너지 공기업도 '비전문가' 낙하산…1·2인자가 親與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 공기업 임원에 금융 문외한인 정치권 출신이 임명돼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 공기업에도 전문성이 부족한 친여(親與) 인사들이 대거 요직을 꿰찬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기에 이뤄지는 알박기식 낙하산 인사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의 신임 상임감사로 김상철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정책보좌관이 임명돼 14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동서발전은 지난해 상임감사의 연봉으로 기본급 1억1192만원에 상여금 7696만원 등 총 1억8888만원을 지급했다.

한국기자협회보 기자 출신인 김 감사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노무현재단 사료연구센터본부장 등을 거친 친문 정치권 인사로 분류된다. 현 정부 출범 후에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했다. 당시 임명 때도 산업정책과 관련된 경력은 전무해 산업부 내에서 뒷말이 나왔다.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 김 감사는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낙하산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뜻이 있어 지원을 했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선임된 것”이라며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면서 해당 분야의 이해도와 전문성을 갖췄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자료: 한국동서발전

자료: 한국동서발전

이에 앞서 지난 4월에는 김영문 전 관세청장이 한국동서발전 대표로 선임돼 같은 논란이 일었다. 문 대통령의 경남고 12년 후배로 부장검사 출신인 김 전 청장은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할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발전 업무 전문성이 없다는 점에서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컸다. 한국동서발전은 지난해 사장 연봉으로 총 2억3885만원을 지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낙하산이라고 불려도, 에너지 업무를 오래 담당한 관료 출신은 전문성과 경력이 검증됐기 때문에 실무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며 “에너지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정치인들을 회사의 1ㆍ2인자로 임명하는 것은 에너지 업계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에게 자괴감을 준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대전 동구 국회의원 경선에 참여한 정경수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이 한전원자력연료 상임감사로 선임됐다. 4월에는 강기정 의원실 보좌관 등을 지낸 정성학 전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상임위원이 한전KDN 감사에, 2월에는 민주당 강릉지역위원장 출신인 김경수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특별위원이 대한석탄공사 감사에 임명됐다.

올해 에너지 공기업 임원으로 선임된 친여 인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올해 에너지 공기업 임원으로 선임된 친여 인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밖에 지난달에는 한병환 전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지역난방공사 사외이사에, 7월에는 김용성 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이 한전KPS 사외이사에, 이계성 전 국회 대변인이 힌국전력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또 민주당 강원도당 2020년 총선기획단 출신의 김연희 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 특별위원이 7월 대한석탄공사 사외이사에 임명됐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기관장과 감사ㆍ비상임이사 등은 업무ㆍ경영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엄태영 의원은 “공기업 경영의 문제점을 바로 잡고, 기관장을 견제해야 할 감사는 물론 사외이사까지 친여 성향의 비전문가를 내리꽂고 있다”며 “법률 규정마저 무시한 채 공기업의 주요 보직을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현 정부의 정권 말 알박기 낙하산이 도를 넘어섰다”라고 비판했다. 엄 의원은 이어 “최근에는 야당ㆍ언론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게 유관단체나 산하기관의 숨은 요직으로 임명되는 이른바 그림자 낙하산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에너지 업계의 비판도 거세다. 정부의 탈원전ㆍ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등으로 주요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정책을 옹호하는 친정부 비전문가 인사들을 경영 요직에 앉혔다는 점에서다. 한전과 6개 발전 자회사의 ‘중장기 재무전망 및 계획’에 따르면 이들 7개 에너지 공기업은 2020년부터 5년간 34조원 이상 부채가 급증한다.

공기업 기관장ㆍ감사ㆍ이사의 임기는 2~3년이다. 올해 선임된 이들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1~2년은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문재인 정부 말기에 알박기 낙하산 인사가 판을 치는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에너지 업계는 보수가 다른 업계보다 높고, 비서와 운전기사ㆍ차량 등이 제공되는 등 대우가 좋은 편이다.

역설적으로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직을 종용한 이 정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죄 판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임기 중인 사람들을 강제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다음 정권에서 버틸 ‘안전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강조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시스템을 흔들리게 하는 행태”라며 “낙하산 인사는 국가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고 공공 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국가ㆍ국민에게 타격을 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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