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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오상욱 인터뷰②] 오상욱 "김정환 선배와 친분, 내 자랑거리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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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은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세계적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한 무대였다. 명승부 끝에 금메달을 딴 김정환(38), 구본길(32), 김준호(27), 오상욱(25)은 귀국과 동시에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과 광고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 사이 두 차례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국내 대회에 나가 1~3위를 휩쓸었다. 실력과 외모, 인기를 모두 갖춘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다.

13세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 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어펜저스' 맏형 김정환(왼쪽)과 오상욱. 정시종 기자

13세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 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어펜저스' 맏형 김정환(왼쪽)과 오상욱. 정시종 기자

이들 중 맏형 김정환과 막내 오상욱을 대표로 만났다. 둘의 나이는 13세 차. 김정환은 "오상욱의 중·고교 은사들이 나보다 후배"라며 웃었다. 그럼에도 나이의 간극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놀리며 장난을 치고 폭소를 터트렸다. 같은 반 친구처럼 완벽한 '케미(케미스트리)'였다.

그러다 펜싱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을 때는 나란히 눈빛부터 진지해졌다. 오랜 시간 축적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 선배와 그 자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해 더 크게 자라난 후배의 조화. 혼자서도 충분히 강한 김정환과 오상욱은 함께 있어 더 강해보였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오상욱 선수가 펜싱칼로 침대 밑에 떨어진 물건을 꺼내는 걸 봤어요. 그 외에 펜싱칼로 해본 신박한 일은 뭐가 있나요.
김=저는 방에서 불을 끌 때 써요.(폭소) 칼 끝으로 스위치를 터치하는데, 너무 세게 때리면 버튼이 깨져요. 우리는 포인트랑 파워 조절이 자유자재니까 멀리서 칼을 뻗어서 탁 켜고, 탁 끄고 하죠.
오=못 믿으시는 것 같은데 진짜예요. 체육관에 펜싱칼 들고 나갈 때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칼 끝으로 눌러요.
김=칼 끝으로 '닫힘', 'B1' 버튼 눌러서 내려가는 거죠. 엘리베이터 문이 막 닫힐 것 같아서 급할 때는 런지(다리를 앞으로 최대한 뻗는 동작)로 막지만, 평소에는 발레스트라(앞쪽으로 짧게 점프하는 풋워크) 정도로 들어가면 충분합니다.

-일상생활에 펜싱이 녹아 있네요.
김=일상생활과 펜싱을 접목해 후배들에게 조언하기 시작한 건 제가 개척자예요.(웃음) 예를 들어 운전을 하다 교차로에 진입했을 때, 노란불이 켜지면 그냥 빨리 지나가는 게 안전하잖아요. 그런데 상욱이는 브레이크를 밟아요. 그럴 때 '이건 펜싱이랑 똑같다. 점수를 내서 치고 올라가야 할 때 막히는 거라고 보면 된다'고 얘기하죠.(웃음) 상욱이가 실력은 정말 출중한데, 아직 게임운영이나 전술이 조금 부족해요. 상대가 치고 나갈 때 땀을 닦는 척하면서 맥을 끊거나 하는 요령이 필요하거든요. 선수촌 룸메이트로 생활하면서 이런 부분을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오상욱 선수는 이거 메모했나요?
오=아, 머리로 다 기억했습니다.(웃음)
김=요즘 애들이 이렇게 말을 안들어요. 그렇게 메모를 하라고 해도….(폭소)

-서로 첫 인상은 어땠나요.
김=괴물 루키가 태어날 때의 분위기는 매번 비슷해요. 상욱이가 고3 때였는데,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더라고요. '오상욱이라고 봤어? 원우영 선수랑 오은석 선수를 이겼대' 하면서요. 그래서 어떤 선수인지 보고 싶었어요. 다른 선수들은 상욱이를 모르고 방심하다 졌다면, 저는 얘기를 들은 게 있고 어린 선수들의 게임 방식도 잘 아니까 처음엔 크게 이겼죠. 그러다 상욱이가 국가대표로 뽑혀서 저랑 방을 같이 쓰게 된 거예요. 옆에서 지켜보니 펜싱에 욕심이 많고, 틈날 때마다 펜싱 영상을 보더라고요. 제 영상도 많이 보고.(웃음)
오=겉모습만 봤을 때는 형이 정말 차가워 보였어요. 그때 형 성격이 그랬던 건 아닌데, 저희 같은 후배들이 멀리서 봤을 때는 그랬어요. 형이 경기장에서는 워낙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말을 잘 안하거든요.
김=후배들은 저를 어려워했던 게 사실이죠. 상욱이는 나중에 룸메이트가 돼서 저의 본모습을 많이 봤고요.

13세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 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어펜저스' 맏형 김정환(왼쪽)과 오상욱. 정시종 기자

13세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 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어펜저스' 맏형 김정환(왼쪽)과 오상욱. 정시종 기자

-오상욱에게는 김정환 선배와의 친분이 자랑거리였겠네요.
오=처음엔 정환이 형과 방을 같이 쓰게 돼서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요. 그런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편하고 좋더라고요. 그때 경기장에 나가면 정환이형 덕에 제 어깨가 하늘로 치솟았어요. 다른 친구들이 형한테 인사했을 때 '그래, 잘 있었어?'라고 아는 척만 해줘도 다들 기뻐하던 시절이거든요. 그런데 형이 저한테 친근하게 대해주니까 주변 친구들이 부러워했고, 전 기가 살았죠.
김=제 입장에선 상욱이가 틈날 때마다 질문을 많이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이 타이밍에 이런 동작을 할 땐 무슨 생각이셨어요?' 같은 질문을 하더라고요. 펜싱에 열정 있는 모습을 보고 '이 친구는 내가 도움을 주면 그걸 극대화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제 경험의 농축액을 떠먹여줬죠.

-후배의 시행착오를 줄여준 거군요.
김=헛된 시간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오래 전부터 여러 길을 가봐서 '모범답안'을 갖고 있잖아요. 수많은 경험들 중 내가 해보고 후회했던 건 거르고, 좋은 것만 알려주려고 했어요. 펜싱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요.
오=저한테 진짜 도움이 많이 됐죠. 예전부터 제가 늘 '김정환 선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 이유가 있어요.
김=사실 처음에는 성장 속도가 생각보다 더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팍' 하고 터지면서 진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더라고요. 그때 저도 조금 보람을 느꼈고, 대견하기도 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상욱이의 지금 나이와 시절이 부럽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어야 하는 때가 올 텐데, 그때 잘 내려오는 방법도 나중에 알려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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