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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칼 꽂아” 자존심 구긴 프랑스…美는 "佛도 중요" 달래기

중앙일보

입력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16일(현지시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동맹이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AFP=연합뉴스]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16일(현지시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동맹이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AF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출범한 미국ㆍ영국ㆍ호주 간 신안보협력체제 ‘오커스(AUKUS)’ 발족에 프랑스가 된서리를 맞았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상 중국 견제를 위한 포석으로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키로 한 건 영국(1958년) 이후 호주가 처음이라고 한다.

호주, 美와 핵잠 거래하며 무통보 파기 #프랑스 외교·국방장관 분노의 공동성명 #"미·불, 2003년 이라크전 갈등 때와 유사"

문제는 프랑스가 앞서 호주와 잠수함 기술 이전 계약을 맺고 있었는데, 호주가 별다른 언급 없이 프랑스와의 계약을 파기해버렸다는 점이다. 호주는 2016년 프랑스 해군 그룹(옛 DCNS)을 통해 프랑스의 핵잠수함 바라쿠다(Barracuda)의 기술이 일부 적용된 재래식 잠수함 12척을 2030년부터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통화 비용 등을 고려하면 약 900억 호주 달러(77조원, 560억 유로 상당) 규모의 계약이라고 프랑스 언론들은 추산하고 있다. AFP 통신은 “호주는 계약 파기로 인한 거액의 비용보다는 지정학적 이익을 택했다”고 해석했다.

미국과 호주로선 전략적 득실에 따라 움직인 셈이지만, 공개적으로 자존심을 구긴 프랑스는 격분하고 있다. 장 이브르 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오전 현지 언론 프랑스앵포에 출연해 “(호주가)등에 칼을 꽂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 정부를 향해서도 “일방적이고 잔인하며 예측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트럼프가 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 동맹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프랑스는 당연히 미국, 호주 어느 쪽으로부터도 사전 통보를 못 받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사전에 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 주재 필립 에티엔 프랑스 대사 역시 관련 내용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으며, 이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설명했다.

미 프랑스 대사관은 이날 저녁 개최 예정이었던 미국의 독립기념일 관련 리셉션을 “분노에 차서” 취소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이번 일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정부와 조지 W.부시 미 정부 때의 외교 경색 국면이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영국·호주와의 3자 정상 화상회의를 통해 새로운 안보협력체제 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영국·호주와의 3자 정상 화상회의를 통해 새로운 안보협력체제 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배경에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구하면서 유럽의 전통 동맹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불만도 작용하고 있다. 16일 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과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에서 미국을 겨냥해 직접 불만을 제기했다. “인·태 지역에서 전례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는 시기에 호주와의 협력에서 프랑스와 같은 유럽 파트너를 제외하는 미국의 선택은 유감스러운 일관성 부재”라면서다. 공동성명은 “이번 결정은 ‘유럽의 전략적 자립’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필요성을 강화할 뿐”이라고도 했다.

유럽연합(EU) 대변인도 AFP에 “새로운 안보결정을 (사전에)통보 받지는 못 했다”며 “오커스는 10월 룩셈부르크 EU 외교장관회에서 주요 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때부터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이란핵합의(JCPOA) 파기 등으로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ㆍNATO) 핵심 국가들과 마찰음을 빚어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미국으로부터 “전략적 자주성”을 확보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오커스 및 핵잠수함 파동을 통해 미국의 동맹 전략이 트럼프라는 돌발 변수를 넘어 큰 틀에서 변화하고 있음이 명백해진 셈이다.

한편 드리앙 외교장관이 바이든 대통령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유한 것을 놓고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내놨다고 NYT는 전했다. 반면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프랑스는 인태 지역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중요한 파트너”라며 한층 유화적인 메시지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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