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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독일인의 슬기로운 ‘위드 코로나’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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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하선규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하선규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독일 측의 초청으로 연구년을 보내기 위해 필자는 지난해 8월 초부터 지난달까지 약 1년간 베를린에 머물렀다. 비자 발급부터 독일로 가는 길은 곡절이 많았고 험난했다. 지난해 10월부터 2차 감염 불길이 독일 전역을 덮쳤다. 가장 극심했던 때는 하루 확진자가 3만여 명, 하루 사망자가 900명을 넘었다.

결국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11월 2일부터 광범위한 2차 봉쇄(Lock down)를 단행했다. 약국·병원·주유소·마트를 제외한 모든 상점과 기관을 폐쇄했다. 식당·호텔·쇼핑몰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은 모두 문을 닫았다. 봉쇄 조치는 올해 5월 말까지 이어졌다. 통일 독일의 수도이자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부상한 베를린이 ‘유령 도시’로 변했다.

학교·극장·도서관과 가깝게 지내
코로나 이후 준비하는 ‘삶의 백신’

추운 날씨보다 더 을씨년스러운 ‘집콕’ 기간 동안 필자는 세 가지 인상 깊은 경험을 했다. 첫째, 봉쇄 연장을 결정할 때 최우선으로 고민한 과제가 초중등 학생들의 등교였다는 점이다. 갑론을박 끝에 정부는 일주일 동안 감염지수가 10만 명당 100명 이하일 경우에는 모든 학생이, 100~150명이면 학생들이 절반씩(이틀에 한 번씩) 등교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물론 두 가지 방역 수칙이 필수 조건이었다.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교실에서 선생님의 지도로 일주일에 두 차례 코로나 신속 검사(Antigen-test)를 받는 것이었다. 독일의 신속 검사는 정확도가 한국에서 일반적인 PCR 검사보다 다소 떨어지지만, 15분이면 결과를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무증상 전파자를 걸러내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지금도 독일에서 식당 등 실내 다중 이용 시설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3G (Getestet·Genesen·Geimpft)’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3G란 각각 당일 신속 검사에서 음성을 받은 사람, 코로나에 걸렸다가 완치된 사람, 2차례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을 말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학교 봉쇄로 인한 문제점을 사회 전체가 광범위하게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코로나 시대 이후의 사회를 미리 대비하는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둘째, 연극·극장·전시·공연 등 문화예술인들의 어려움에 관한 보도가 눈에 들어왔다. 필자가 본 독일의 공영방송 뉴스에서는 매주 두세 차례 이상 이들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혹자는 ‘나라가 여유가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결코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독일 공영방송 뉴스는 사회 전체를 균형감 있고 세밀하게 점검했다. 이런 균형감과 세밀함이 없다면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문화예술인의 상황을 지속해서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책에 대한 존중이 각별했다. 끝없이 이어지던 봉쇄 와중에 공공 도서관과 동네 책방이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공공 도서관은 매주 이틀 오후 반나절씩 열었고, 동네 책방은 마스크 착용과 인원 제한을 준수하면서 손님을 맞았다.

그 엄혹한 시기에도 문화복지 인프라와 독일인들의 책 사랑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방은 지역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산책 코스였고, 쇼윈도에 매주 신간을 새로 전시할 만큼 활기가 있었다. 매년 세계 최대의 도서전을 여는 나라의 정신적 바탕인 것 같았다.

코로나의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 생존의 고통은 깊어지고, 기괴한 불안감과 불길함에 정신은 방향을 잃어간다. 그런데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의 삶을 좀 더 신중하고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학교·문화예술·책은 당장 급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소홀히 하면 미래 세대는 소중한 ‘삶의 백신’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재난지원금 25만원이 통장에 들어오느냐보다 훨씬 더 중대한 사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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