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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리먼 브라더스'?…‘헝다 리스크’ 中 공산당 발목 잡나

중앙일보

입력

15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헝다그룹 본사 앞에서 '돈을 돌려달라'면서 투자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15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헝다그룹 본사 앞에서 '돈을 돌려달라'면서 투자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동부유(共同富裕) 기치에 중국 최대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이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대마(大馬)’인 헝다의 붕괴는 부동산 업계를 넘어 중국 금융 시스템까지 뒤흔들 수 있다. 헝다 문제는 중국 경제의 뇌관인 과잉 부채와 연관이 깊기 때문이다.

증권시보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헝다는 지난 13일 밤 성명을 내고 “파산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회사가 전례 없는 어려움에 봉착했다”며 “전력을 다해 경영을 정상화할 것”이라며 회사의 자금난을 시인했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AFP=연합뉴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AFP=연합뉴스]

지난 1997년 설립된 헝다는 부동산 사업으로 급성장했다. 창업자 쉬자인(徐家印) 회장이 2017년 중국 부호 순위에서 1위에 오를 정도였다. 부동산을 넘어 금융과 헬스케어, 여행, 스포츠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도 이어왔다. 몇 년 전부터는 전기차 사업 등 신사업에 거액을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 자금을 대출에 의존한 게 문제였다. 공동부유를 내세운 중국 정부는 집값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말 부동산 개발업체가 은행에서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는 것을 차단하는 ‘3대 마지노선’ 제도를 내놨다. 국유은행은 앞다퉈 부동산 관련 대출 회수에 나서고 있다.

돈줄이 막히면서 헝가다 막대한 부채를 갚을 길이 사라졌다. 지난 6월 말 기준 헝다 부채는 1조9700억 위안(약 355조원)이다. 자기자본은 4110억 위안(약 74조원)에 불과해 부채비율이 480%나 된다.

헝다 그룹 주가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헝다 그룹 주가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회사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15일 홍콩 증시에서 헝다 주가는 2.81 홍콩달러에 마감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83.25% 하락했다. 지난 5월 말 80센트 수준이던 헝다 회사채 가격은 이달 들어서 28센트까지 추락했다. 회사 자금난이 수습 불가능한 지경이라 채무불이행(디폴트)이 가까운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4일 홍콩의 한 광고판에 헝다그룹의 부동산 개발 조감도가 걸려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4일 홍콩의 한 광고판에 헝다그룹의 부동산 개발 조감도가 걸려있다. [EPA=연합뉴스]

문제는 헝다 리스크가 중국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부실채권 규모는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중국 최대은행인 공상은행을 비롯한 중국 4대 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조325억 위안(약 188조2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3% 증가했다. 부실채권 중 상당 부분이 부동산 관련 대출이란 점에서 대마(大馬)인 헝다 그룹의 붕괴는 산업 전반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헝다 신용등급을 ‘CCC+’에서 ‘CC’로 강등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헝다가 파산할 경우 대규모 채권을 보유한 중국 건설사와 중소형 은행의 연쇄 파산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중국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때문에 2008년 리먼 브라더스나 1990년대 후반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 사태가 중국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투자자들이 헝다 위기를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비교하기 시작했다”며 “레버리지 투자자들은 중국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닛케이도 “일본 부동산 버블붕괴도 (중국과 같은) 정부의 과도한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에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정부 도움 없이는 헝다가 나아지기 힘든 상황”이라며 “헝다 문제는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헝다 문제는 중국 공산당의 발목을 잡을 정치 이슈로까지 번지고 있다. 원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투자자의 분노가 정부로 향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중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광둥성 선전시 헝다그룹 본사를 비롯한 중국 각지에서 투자자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민간 기업 파산에 투자자들이 항의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헝다에 대한 디폴트 허용은 중국 정부엔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부동산 시장 안정 의지가 커 헝다에 유동성 지원을 하기보다 파산을 용인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이는 헝다의 부실을 금융권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해 이뤄지는 것이므로 금융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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