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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선 돈걱정 마세요"…자영업자들 프사엔 눈물의 검은리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저의 소중한 언니, 오빠, 삼촌, 엄마, 아빠들…제발 힘내주세요.”

최근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코로나19와 영업제한이 덮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자영업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자 추모와 함께 부탁을 적은 것이다. 글쓴이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제발 모든 사장님 잘 견뎌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잇딴 자영업자의 극단선택 소식에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는 추모글들이 연일 이어졌다. [아프니까 사장이다 네이버 카페 캡쳐]

잇딴 자영업자의 극단선택 소식에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는 추모글들이 연일 이어졌다. [아프니까 사장이다 네이버 카페 캡쳐]

이 글에는 고인의 명복을 위로하는 1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남 일 같지 않은 이야기라 너무 안타깝다”“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등의 내용이다. 추모와 함께 동병상련의 마음을 담은 글들도 많다. “같이 힘을 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 20대 카페 여사장님도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너무 우울하다”는 토로가 이어졌다.

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에 소속된 자영업자들은 온라인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근조리본을 내걸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에서 23년간 호프집을 운영해온 자영업자 A씨(57)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부터다. 시민과 자영업자들은 A씨의 마포구 가게를 찾아와 "천국 가셔서 돈 걱정 없이 사세요" "편히 쉬세요"라고 적힌 메모들을 붙였다. A씨는 숨지기 전 자신이 살던 가게 지하의 원룸을 내놓고 그 돈으로 직원의 월급을 준 뒤 세상을 떠났다. A씨가 숨진 뒤, 근처에서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채권을 요구하거나 집을 비워달라는 문자들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자영업자 비대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검은 리본으로 프로필을 바꾼 자영업자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추모를 하고 있다. 비대위 제공

자영업자 비대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검은 리본으로 프로필을 바꾼 자영업자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추모를 하고 있다. 비대위 제공

잇따르는 죽음…“이게 다가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줄어든 수입에 임대료를 갚지 못해, 인건비를 마련하지 못해서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상황이다. 마지막 순간, 주변에 “이젠 쉬고 싶다” “힘들다”고 털어놓은 이들도 있었다. 경기 평택시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박모(37)씨는 배달대행과 막노동 등을 하며 임대료를 메꿔왔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며 임대료를 벌었지만, 지난 7월 2일 본인의 가게 인근 차량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유서는 없었다. 그는 죽기 전 “쉬고 싶다”며 주변인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고 한다. 지난 12일 전남 여수의 한 치킨집 주인 B씨도 “힘들다”는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14일 오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은 점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마포의 한 주점 입구에 추모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뉴스1

14일 오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은 점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마포의 한 주점 입구에 추모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뉴스1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추모조차 받지 못한 죽음이 더 많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은 “더 많은 자영업자가 생활고로 목숨을 끊고 있지만, 유족이 공개하길 원치 않아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라며 한숨짓고 있다.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 조지현 공동대표는 “공론화되지 않은 사장님들의 죽음이 너무 많다. 주변 지인이 어떻게 자살했는지, 본인이 왜 죽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 오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살자고, 살아서 이야기하자고 절규하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루 평균 1000여개 매장 폐업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14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코로나 사태로 유명을 달리하신 두 분 사장님을 비롯한 소상공인 분들의 죽음 앞에 명복을 빌며 죽음까지 내몰리는 자영업자들의 극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의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년 6개월 동안 자영업자들은 66조가 넘는 빚을 떠안았다. 하루 평균 1000여개의 매장이 폐업했고 현재까지 총 45만 3000개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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