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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빈틈 뚫은 ‘8자 비행’ 순항미사일…김정은의 몸값 높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13일 순항미사일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이날 “9월 11일과 12일 새로 개발한 신형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며 “발사된 장거리순항미사일들은 우리 국가의 영토와 영해 상공에 설정된 타원 및 8자형 비행궤도를 비행해 1500㎞ 계선의 표적을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국방과학원은 새로 개발한 신형장거리순항미사일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국방과학원은 새로 개발한 신형장거리순항미사일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 3월 25일 이후 170일 만이다. 북한이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고 공개한 건 처음이다. 북한은 지난 1월과 3월에도 각각 유사한 발사실험을 했지만 당시엔 침묵했다.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시험발사’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를 공개한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이미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힌 순항미사일을 8개월 뒤 시험발사했다는 점에서다. 또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이틀 연속 미사일을 쐈는데, 11일 발사 뒤 한ㆍ미 당국 등 주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12일 재차 쐈고 그래도 조용한 모습을 보이자 13일 스스로 공개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북한이 지난 7월 영변 핵시설 가동에 이어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전술핵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북ㆍ미 협상을 앞두고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된 메시지 전송인 셈이다. 발사 현장을 찾았던 박정천 비서(전 총참모장)가 “전쟁 억제력 목표달성에서 계속되는 성과들을 쟁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전쟁 억제력’으로 표현해 왔다.

북한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한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트랙터 보인 뒤 ‘8자 비행’ 순항미사일

북한은 지난해부터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경제난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사일 발사는 김 위원장의 지시를 이행하는 본보기로 신형미사일을 통해 대내 결집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북한이 지난 9일 열병식에 이틀 뒤 순항미사일을 동원한 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피하면서도 극적 효과를 노렸을 것으로 풀이된다. 한ㆍ미 정보 당국은 지난달 연합훈련을 전후해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비해 왔다. 한ㆍ미가 연합훈련을 할 경우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으로 대응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3일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던 이유다.

북한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주요 특징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북한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주요 특징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북한은 지난달 26일 한ㆍ미 연합훈련이 끝난 뒤 침묵을 지키다 지난 9일 정규군을 제외한 채 트랙터 등을 동원한 ‘조촐한’ 열병식을 했다. 정규군을 제외한 열병식을 통해 안심시킨 뒤 첨단 미사일 발사로 반전을 시도한 셈이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국제사회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미사일을 금지했다”며 “북한은 순항미사일을 동원해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안심시키고 반격하는 빨치산식 전술을 구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순항미사일은 대북 제재의 빈틈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추가 대북제재를 피하려 했음을 뜻한다.

요격 무력화ㆍ핵소형화 과시?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는 대북제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떠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ㆍ미 당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순항미사일은 음속(시속 1220㎞ 안팎)의 수 배의 속도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에 비해 느리고, 작은 탄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폭발력이 떨어진다. 이날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평균 시속 712㎞다.

북한이 올들어 발사한 미사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이 올들어 발사한 미사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럼에도 순항미사일은 일정한 비행궤적을 그리는 탄도미사일과 달리 저고도로 장시간 비행하고, 최종단계에서 회피기동과 탐색기(시커)를 활용해 요격을 피하면서 명중률을 높인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면 한국 전역은 물론,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들도 공격 범위에 들어온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순항미사일은 사전에 확보한 비행궤도의 3차원 지형정보가 필요하다”며 “지형정보를 제작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북한은 주로 2차원 정보를 이용한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한동안 미사일 발사 현장을 빼놓지 않고 찾았던 김 위원장은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데서 ‘수위 조절’ 등의 의미를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군 부대를 공개적으로 찾지 않는 분위기의 연장일 수는 있지만, 자신의 집무실 등에서 원격으로 챙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주장대로라면 이날 미사일은 2시간 6분 33초 동안 비행했다”며 “발사 뒤 (미사일의) 실물이 보이지도 않는 현장이 아니라 미사일에 장착된 카메라 등에서 보내오는 상황을 모니터로 점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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