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반대" 테크래시 전세계 번지지만…中 노림수는 다르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13 05:00

업데이트 2021.09.1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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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서비스무역교역회 행사장에 중국 음식배달앱 메이퇀의 부스가 설치돼 있다.[AP=연합뉴스]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서비스무역교역회 행사장에 중국 음식배달앱 메이퇀의 부스가 설치돼 있다.[AP=연합뉴스]

“올 것이 왔다.”
최근 국내 대형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주가가 규제 우려로 급락한 것에 대한 시장의 평가다. 미국, 중국, 유럽에선 이미 대형 기술기업(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왔다. 이런 움직임이 국내로 옮겨 오는 건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테크래시(techlash)’의 한국 상륙이다.

테크래시는 기술(technology)과 반발(backlash)의 합성어다. 옥스퍼드대 영어사전은 테크래시를 빅테크의 성장과 영향력에 대해 광범위하고 강한 반감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말 “그동안 말만 무성하던 테크래시가 2021년부터 본격 시작될 것”이라며 “세계가 빅테크의 힘을 통제하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 [로이터=연합뉴스]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 [로이터=연합뉴스]

테크래시는 정부와 의회가 빅테크를 옥죄는 형태로 전개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아마존 저격수’라고 불리는 리나 칸 컬럼비아대 교수를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 임명했다. 칸 위원장은 2017년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논문으로 플랫폼 기업을 적극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 의회는 빅테크 규제에 초당적 협력 중이다. 지난 6월 하원 민주·공화당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빅테크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반(反)독점 패키지’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경쟁기업 인수·합병 심사 강화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자체 브랜드 판매 금지 ▶플랫폼에서 자사 서비스 우선 노출 행위 금지 등이 담겼다. 상원은 지난달 구글·애플 등 앱 마켓 사업자가 자사 결제 시스템을 개발사에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오픈 앱마켓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 말 통과된 한국의 인앱 강제 결제 방지법과 내용이 같다.

빅테크 규제 열 올리는 세계 각국.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빅테크 규제 열 올리는 세계 각국.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도 지난해 10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금융당국 정책 비판 발언 이후 빅테크 때리기 중이다. 알리바바엔 반독점 위반으로 거액의 벌금을,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에는 국가안보 위반 혐의로 앱스토어 삭제 조치를 내렸다. 음식 배달 플랫폼 메이퇀(美團)에는 “배달 기사를 직고용하라”고 명령했다. 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사교육 기관의 학교 수업 관련 이윤 추구를 금지하면서 학원 기업 신둥팡교육(新東方敎育)의 주가가 폭락했다. 18세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이용도 금요일 저녁, 주말과 공휴일에 하루 최대 1시간만 허용했다. 중국 게임시장에서 56% 점유율을 가진 텐센트를 겨냥한 조치란 평가가 나온다. 중국 당국은 텐센트에 ‘음반사와 체결한 독점 판권 계약을 포기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지난 10일엔 알리바바, 바이두 등에 자사 플랫폼에서 경쟁사의 서비스를 쓸 수 있게 하는 ‘플랫폼 개방’을 지시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해 12월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 초안을 발표했다.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으로 자사 서비스를 우대하거나 스마트폰에 선탑재된 앱을 삭제하는 걸 막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만약 어기면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내거나 강제로 기업을 분할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각국 정부가 테크래시에 나서는 목적은 같으면서 다르다. 코로나19로 빅테크만 홀로 엄청난 수익을 가져간 것에 대한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점은 각국이 비슷하다.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팬데믹에서 자유로운 빅테크가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하는 걸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의회와 정부가 뭉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앱 아이콘 모습.[AFP=연합뉴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앱 아이콘 모습.[AFP=연합뉴스]

다만 전통적으로 반(反)독점 정서가 강한 미국은 빅테크 규제로 시장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스턴컨설팅의 필립 칼슨슬레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 경제잡지 포춘에 “미국은 자유 경쟁을 명분으로 20세기 초 석유회사 스탠더드오일 이후 AT&TㆍIBM·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끊임없이 규제했다”며 “빅테크 규제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구글과 페이스북 등 미국 빅테크에 자국 디지털 시장이 종속된 상황을 타개하려는 목적이 크다.

중국은 반독점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엔 플랫폼 기업의 고객정보를 장악하려는 생각이 있다. 미국 타임지는 “중국은 최근 통과된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플랫폼 기업이 방대한 고객정보를 해외로 유출하는 걸 철저히 막을 생각”이라며 “빅테크 성장으로 젊은이들이 당에서 멀어진다는 우려도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의 한 공사현장에서 인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의 한 공사현장에서 인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진핑 국가 주석이 내세우는 공동부유론을 바탕으로 과도한 빈부격차 등의 불만을 빅테크에 돌리려는 목적도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중국 당국은 업계 1위 기업만 제재한다”며 “잘 나가는 자국기업을 손볼 정도로 중국의 분배상황과 민심이 심상치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테크래시 파도에 빅테크도 분주히 대응 중이다. 아마존, 애플 등은 의회 로비 등으로 반독점 법안 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는 앞다퉈 거액을 사회에 기부하며 시 주석의 공동부유론에 동참한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일각에선 테크래시에도 빅테크에겐 큰 타격이 없을 거란 분석도 있다. 김동희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빅테크 규제 강화는 단기적으로 규제 관련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으나 매출 성장 추세를 막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규제로 인한 위험보다 성장에 따른 주가 상승 잠재력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규제 일변도 속에도 알파벳, 페이스북 등은 성장성을 인정받으며 주가가 연초대비 30~60%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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