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관 사방에 수많은 이름이 줄줄줄 흘러내린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나전장(羅鈿匠) 박의일·김해선·취이…, 동장(銅匠) 장자방·허의순·장충헌…, 목장(木匠) 김삼명·김추업·문의선…. 박물관에 확인하니 8000여 명에 이른다. 때론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이름들이 명멸하며 스크린을 가로지른다.
작품명은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다. 2분 27초짜리 미디어 아트다. 17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 동안 조선시대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 나오는 각 종목 장인을 소환했다. 가례도감은 왕실 혼례(가례)를 위해 설치한 임시기관(도감)을, 의궤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을 말한다.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조선의 독특한 기록문화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옛 마스터들을 3D 영상으로 불러낸 이는 노세환 작가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문화재와 마주쳤지만 그 뒤에 숨은 장인은 알아보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그들의 존재를 잘 몰랐다.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사소한 유물도 새롭게 보게 된다”고 했다.
이 작품은 요즘 ‘인스타 성지’로 떠오른 서울공예박물관 2층에 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현대 작가들의 ‘신상’이 가득한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 주로 눈과 마음을 앗기지만 그 곱고 예쁜 공예품도 상당 부분 과거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부모 없는 자식 없는 법이다. 이른바 문화 DNA다.
문화는 선배를 먹고산다. 노 작가도 한서대 장경희 교수의 선행 연구 덕분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장 교수는 8년 전 『의궤 속 조선의 장인』이란 방대한 책을 냈다. 상하 두 권, 2000여 쪽에 조선시대 장인 10만 명을 불러 모았다. 가례·흉례(凶禮·장례) 등 각종 의궤 542권에 등장한 장인들을 종목별로 정리했다.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먼지 낀 마이크로필름을 돌려보며 장인 관련 대목을 빠짐없이 복사·연구했다.
노 작가 신작을 보며 8년 전 후배 기자와 함께 장 교수를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신분이 낮은 장인들을 왕실 문헌에 빼곡히 올리며 후세에 전한 조선 사람들의 뜻을 반추해봤다. 당시 장 교수의 말이다. “양인(良人) 외에 천인(賤人)도 명단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박말똥이·오개똥·나돌쇠 등등.”
장 교수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박말똥이·오개똥·나돌쇠, 한국 문화의 밑바탕을 다져온 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여전했다. “명단 정리 이후 장인들의 작업과 일생을 파고들었어요. 일례로 어보(御寶·임금 도장)나 옥책(玉冊·왕이나 왕비의 존호를 올릴 때 옥 조각을 엮어서 만든 책)을 만들 때 장인 수십 명이 참여합니다. 또 그들은 각기 40~50년 활동했고요. 지금껏 정리한 분량만 A4용지로 5000쪽이 넘어요.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웃음)”
문화, 나아가 역사를 짊어진 무명인의 자취를 최근 또 다른 곳에서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에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시작해 우리 전통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품을 견주며 한국미의 원형을 탐색한 이번 특별전의 마지막 코너에서 마주친 조덕현 작가의 ‘오마주 2021-Ⅱ’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이 작품은 가로 830㎝, 세로 350㎝ 대작이다. 화폭을 가득 채운 한복 차림의 갑남을녀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다. 20세기 초반에 살다간 우리네 할아버지·할머니들이다. 작품에는 한국의 슬픈 근대사가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한국인의 인류학적 특성, 즉 신체 조건을 조사하려고 지역별로 찍은 유리건판 사진이 모태가 됐다.
조 작가는 이들 사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시대 상황은 열악했지만 사람들 눈빛은 살아 있었습니다. 형형했어요.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옛사람들에 대한 제 지식이 얼마나 알량했는지 반성하게 됐죠. 원판 사진을 토대로 옛사람 256명의 모습을 연필로 다시 그렸습니다.”
조 작가는 작품 속에 오세창·전형필·최순우·윤이상·백남준·나혜석 등 20세기 문화인도 슬쩍 집어넣었다. 고난에도 꺾이지 않은 민초·예술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퍽퍽한 요즘이다. 한가위가 다가왔건만 전혀 흥이 나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친지 간에 따듯한 밥 한 그릇 나누기도 쉽지 않다. 비방·모략이 판치는 대선 정국도 어둡기만 하다. 그래도 추석은 추석이다. 차례상에 오를 ‘대추 한 알’을 새겨본다. 시인 장석주가 읊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