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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규제 거세지나…금융위 “시정 노력 없으면 엄정 대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카카오페이 등 금융플랫폼에 대한 금융당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9일 “위법소지가 있음에도 자체적인 시정 노력이 없는 경우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금융위는 금융플랫폼이 금융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채 서비스했던 펀드와 보험 등의 맞춤형 금융상품 추천이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네이버 카카오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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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이날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파이낸셜, 비바리퍼플리카(토스), 뱅크샐러드 등 빅테크·핀테크 기업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난 7일 금소법과 관련해 내린 유권해석에 대한 후속 보완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는 “온라인 채널은 여러 금융상품 판매채널 중 하나”라며 “혁신을 추구하더라도 금융규제와 감독으로부터 예외를 적용받기보다는 금융소비자보호 및 건전한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한 번 더 생각해달라”고 했다.

전날 카카오페이가 금융당국의 지침에 대해 “카카오페이는 기존의 금융 서비스가 갖고 있던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집중해 왔다”고 밝힌 데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금융위는 '날벼락'이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유권해석에 대해서도 “지난 3월 이후 여러 차례 알렸던 판단 기준을 좀 더 구체화했을 뿐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충분한 계도 기간을 준 만큼 오는 25일부터 시행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업체들이 계도기간 연장을 요청했지만 금융위는 불가 원칙을 밝혔다.

금융위는 지난 3월 17일 보도자료 등을 통해 특정인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거나 판매 건당 수수료를 받는 것은 중개행위라고 밝혔다. 이런 기준을 적용할 경우 카카오페이와 뱅크샐러드 등이 제공하는 투자 상품 추천은 금소법 적용 대상이 돼 금융상품 중개업자 등으로 등록해야만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신원근 카카오페이 부사장이 9일 서울 시내의 한 회의실에서 열린 '핀테크 플랫폼 금소법상 금융상품 판매 관련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신원근 카카오페이 부사장이 9일 서울 시내의 한 회의실에서 열린 '핀테크 플랫폼 금소법상 금융상품 판매 관련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업체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카카오페이가 지난 7월 금융당국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당사가 인가나 등록이 없는 상태에서 보장성 상품이나 투자성 상품에 대한 대리·중개행위를 하는 경우 추후 금융당국으로부터 해당 업무 중단 등 시정요구를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의 지침에 빅테크·핀테크 기업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이들 기업은 송금과 결제 등 간단한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와 데이터를 모은 뒤 이를 바탕으로 대출과 투자, 보험 등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이익을 내는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매출에서 금융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 0.2%에서 올해 1분기 33.3%로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시장법과 보험업법 등이 개정되지 않으면 금융플랫폼 업체가 펀드나 보험 등을 중개하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본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나마 보험은 금융위가 플랫폼 업체도 중개가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펀드 등 투자성 상품에 대해서는 법 개정 계획이 없다. 대출 외에는 사실상 금융중개 서비스가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중개업자로 인가를 받더라도 은행 등 기존 금융권처럼 까다로운 6대 판매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의 지침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면서도 “맞춤형 상품 추천 등 기존 금융업과 비교해 확보한 장점을 상당 부분 포기하라는 것이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9일 빅테크 기업에 대한 추가 규제 가능서에 대해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고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9일 빅테크 기업에 대한 추가 규제 가능서에 대해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고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의 빅테크 압박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주요 금융권에서는 금융환경이 빅테크와 핀테크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날 빅테크 기업 등에 대한 추가 규제 가능성에 대해 “동일기능, 동일 규제 원칙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고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빅테크에만 좋은 일을 해준다'는 비판을 들었던 대환대출 플랫폼 구축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 카카오나 네이버 등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산업 육성 등을 이유로 빅테크와 핀테크 기업에 금융권에 비해 느슨한 규제를 적용해왔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등을 통해 현행법상 영업이 어려운 후불결제 등을 네이버파이낸셜 등에 허용한 게 대표적이다.

이베스트증권 전배승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금융플랫폼 업체에 유리하게 적용됐던 규제 차익의 축소를 의미한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의 중금리대출 비중 확대 조치에 이어 빅테크·핀테크 업체 입장에서는 규제 이슈 부담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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