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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만 볼게" 프랑스서 딸 데려가 5년 연락끊은 전남편 "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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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권 관련 이미지 [사진 expertise.com]

양육권 관련 이미지 [사진 expertise.com]

이혼 후 프랑스인 전 부인이 양육하던 다섯 살배기 딸을 면접교섭 기일에 데려간 친부가 5년간 연락을 끊고 아이를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친부라도 미성년자약취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친자녀 미성년자약취죄 처벌 첫 사례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프랑스에 있던 딸을 한국으로 데려와 5년간 다시 데려다주지 않은 친부 A씨에 대해 미성년자약취죄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남편은 항소심 도중 프랑스로 돌려보내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전남편 “한 달만 데려갈게” 5살 딸 한국 데려가 연락두절

한국인 A씨와 프랑스인 B씨는 2007년 국제결혼을 했다. 프랑스에서 살던 그들은 2009년 딸을 낳았지만 2012년 A씨가 한국으로 귀국하며 별거에 들어갔다. 딸과 프랑스에 남은 B씨는 프랑스 법원에 이혼청구를 했다. 프랑스 법원은 딸의 거주지를 B씨의 집으로 정하고 A씨는 여름 방학 때 한 달간 원하는 장소에서 면접교섭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결정을 냈다.

2014년 7월 A씨는 한 달간의 면접교섭 기간을 약속하며 딸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약속된 8월이 되어도 A씨는 딸을 프랑스로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B씨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B씨는 프랑스 경찰에 A씨를 고소하는 한편, 한국 법원에도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 소송을 냈다. 한국 법원은 B씨를 양육자로 정하고 A씨에게 아이를 보내라고 명령했지만 A씨는 이마저도 따르지 않았다. 결국 B씨는 A씨가 딸을 데려간 행위가 미성년자약취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전남편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법원 "돌려보내라" 명령 불응 …"미성년자 약취죄 인정"

형법에서 ‘약취’는 폭행이나 협박 또는 불법적인 힘으로 피해자를 그 의사에 반해 자유로운 생활이나 보호 관계로부터 이탈시켜 자신 등의 지배 아래에 두는 행위를 말한다.

1심은 A씨의 미성년자약취죄가 인정된다고 보고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은 “아이의 나이 및 엄마와 떨어지는 과정에서 겪었을 정신적 충격 등을 고려했다”며“태어나고 자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아이를 데려오고 엄마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한 A씨의 행위는 결코 아이의 성장과 복리를 도모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2심 역시 A씨의 유죄는 인정했지만, A씨에게 선고유예의 선처를 베풀었다. 2심 재판 중이던 2019년 A씨가 딸을 B씨에게 보내줬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인정한 2심을 확정했다.

“친딸이라도 면접교섭 후 안 돌려보내면 처벌” 첫 사례

부모가 별거 또는 이혼한 상황에서 한 배우자가 면접교섭권을 행사해 아이를 데려갔다가, 그 기간이 끝났는데도 다른 부모에게 데려다주지 않을 때 미성년자약취죄로 처벌이 가능해지는 걸까. 대법원의 답은 “항상 미성년자약취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다.

대법원은 미성년자약취죄 해당 여부를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 정황과 피해 아동의 상태 ▶자녀의 최대한의 복리 우선 원칙 등에 비춰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경우 엄마와 잘 지내던 딸을 A씨가 다시 데려다주지 않은 것은 '사실상 딸을 A씨지배 아래두기 위함'이라는 목적과 의도가 인정됐다. 또 만 5세에 불과한 딸이 A씨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스스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아이는 위협에 대처할 능력도 없는 상태였다. 가정법원이 아이의 복리를 우선시해 양육자를 B씨로 결정했는데, 이를 위반하는 것은 딸의 복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실제 딸은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살면서 프랑스말을 잊어버리고, 엄마와의 유대관계까지 잃는 상황에 처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다시 데려다주지 않음’이라는 행위도 미성년자 약취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첫 사례다. 적극적으로 주소를 바꾸거나 강제로 데려간 것이 아니어도 약취죄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면접교섭권 행사를 빌미로 아이를 데려간 뒤 가정법원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때 형사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선 별도 형사처벌 조항…입법적 보완 필요”

B씨를 변호한 김재련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국제결혼 부부뿐 아니라 내국인 사이에 미성년 자녀를 둔 이혼 사례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당초 A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는 등 수사기관이 처벌 의지를 보이지 않자 재정 신청까지 진행해 법원에서 A씨에 대한 법적 판단을 이끌어냈다.

친부모 간 분쟁 속에 놓인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주기도 했다. 2019년 항소심은 A씨에게 "아이를 엄마에게 보내지 않으면 중형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제서야 A씨는 딸을 프랑스로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 때 김 변호사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프랑스로 가 엄마에게 보내주고 돌아왔다. 아이는 현재 프랑스에서 엄마와 지내며 건강히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넘어선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형법에는 '친권 행사에 관한 장'이 있어 면접교섭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아이를 되보내주지 않거나, 양육비 지급을 하지 않는 경우, 정당한 면접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 모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약취' 등이 인정되어야 형사처벌이 가능한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김 변호사는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아동은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우리나라도 부모가 이혼하면서 미성년 자녀를 볼모로 삼는 식의 행위를 못 하도록 입법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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