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8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고발장을 낸 시민단체 대표를 불러 조사했다. 공수처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공수처는 “기초 조사의 연장 선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수처 “기초 조사…수사 착수 아니다”
공수처는 이날 오전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 대표를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사세행은 지난 6일 윤 전 총장과 한동훈 검사장,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직선거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해 달라며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번 고발인 조사는 공수처가 접수한 다른 사건에 비해 신속하게 이뤄졌다. 공수처는 윤 전 총장 관련 다른 사건에선 접수 후 입건 혹은 이첩하면서 고발인 조사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을 정식 입건한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 수사 의혹과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방해 사건 등의 경우 각각 지난 2월과 3월 사건을 접수한 뒤 고발인 조사 없이 지난 6월에 입건했다.
윤 전 총장의 라임 술접대 사건 은폐 의혹의 경우 지난 6월 접수한 뒤 역시 고발인 조사 없이 지난달에 검찰에 이첩했다. 이에 공수처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신속한 수사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공수처는 이번 고발인 조사와 관련해 “기초 조사의 연장 선상이며 수사 착수나 입건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발인, “공수처 직접 수사 의지 느껴”
이와 관련 김 대표는 조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직권남용 등 다섯 가지 혐의로 고발했는데 공수처가 국가공무원법 위반은 취하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요청을 받아들여 고발인 조사를 받는 도중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위반은 공수처법상 직접수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취하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수사하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취하를 요청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공수처가 나머지 혐의를 직접 수사할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수사를 통해 이번 의혹에서 관련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지에 대해 법조계에선 대체로 신중론이 우세하다. 국가공무원법 이외에 사세행이 고발한 공직선거법 및 개인정보법도 공수처 수사 범위 밖이다.
법조계, “관련 혐의 적용 쉽지는 않아”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의 경우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 범죄가 맞지만, 해당 의혹과 관련해 적용이 쉽지 않다는 견해가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발이 검사의 독점 권한이 아니고 누구든 고발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이번 의혹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건 맞지 않아 보인다”며 “판결문을 전달한 걸 두고 공무상 비밀누설이라 하는데, 판결문은 공개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지검 순천지검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공수처가 수사를 한다고 해도 법리적으로 혐의를 증명하기가 현재로썬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라며 “현재 윤 전 총장과 관련 사건의 연관 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의혹 수준 상태에서 유력 대권 주자를 수사하는 건 공수처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시민단체의 고발은 이어졌다.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등 20개 단체는 이날 윤 전 총장과 손 검사, 김웅 의원 등 3명을 직권남용을 비롯해 공무상 비밀누설, 공직선거법 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