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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금성전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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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휴전협상이 한창이던 1953년은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사력을 다하던 때다. 영화 ‘고지전’처럼 고지 하나를 놓고 매일 주인이 바뀌었다.

휴전에 반대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 18일 2만7000여 명의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했고, 분노한 중국은 24만여 명의 병력을 한국군이 지키던 강원도 김화 일대에 투입했다. 6·25 전쟁 최후의 대격전으로 불리는 금성전투다.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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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갑작스런 대공세를 맞닥뜨린 한국군 3개 사단은 패닉에 빠졌다. 이후 2개 사단을 증원하고, 미 24사단과 187공수여단도 급파했지만 기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1주일간 양측에서 40만명이나 투입된 이 전투는 중국 측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한국군은 1만43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전투 초반 중국의 거대 포위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동굴 등에서 버티던 군인들이 대거 희생됐다. 이 결과 한국군과 유엔군은 당초 전선에서 4㎞가량 뒤로 밀려났고 이 상태에서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이를 다룬 중국 영화 ‘1953 금성 대전투’가 최근 등급 분류를 거쳐 유통될 예정이다. 배급사 측은 “한국군이 아니라 미군이 나온다”고 해명했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논란은 커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상영이 허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인 만큼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대립 같지만, 자국에 불리한 콘텐트를 철저히 막는 중국의 태도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개방과 공정이라는 화두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