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모의수능 유출 고교, 시험지 통째 학생 오가는데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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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 유출 의혹 관련 이미지. 이번 사건과 상관없음. [연합뉴스]

지난 1일 치러진 9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평가 시험지가 사전에 유출된 경남의 한 고등학교는 시험지를 배부받은 후 곧바로 지정 장소인 ‘평가관리실’이 아닌 임의장소인 ‘진학상담실’에 모든 과목 시험지를 상자째 보관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7일 경남교육청 등에 따르면 이 학교는 지난달 30일 오전 3학년 수능 모의평가 시험지를 배부받은 뒤 이중 잠금장치가 된 평가관리실에 옮기지 않고 학생들의 출입이 가능한 진학상담실에 옮겨 보관해 왔다. ‘수능 9월 모의평가 실시 요강’에 따르면 모의평가 시험지는 이중 잠금장치가 된 특정 장소에 보관하게 돼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는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된 교무실이나 인근 평가관리실로 통칭하는 장소에 보관하는데 이 학교는 해당 지침을 어겼다.

학교 측이 이렇게 허술하게 시험지를 관리하면서 모의평가 시험지는 지난 1일 시험이 치러질 때까지 사흘 가까이 학생들의 출입이 가능한 진학상담실에 상자째 놓여 있었다. 사실상 상담실을 오갔던 학생이라면 이곳에 시험지가 비치돼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았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결국 이런 허술한 시험지 관리는 사전 유출로 이어졌다. 이 학교 3학년 A학생은 지난달 31일 오후 10시쯤 학교로 들어가 진학상담실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상담실 출입문은 잠금장치가 돼 있었지만, 창문은 제대로 잠겨 있지 않았다는 것이 경남교육청의 조사 내용이다.

이후 A학생은 “세계지리 과목 시험지 박스를 뜯어 그 안에 봉투를 개봉한 뒤 스마트패드로 사진을 찍은 뒤 역순으로 봉인을 한 뒤 학교를 빠져나왔다”는 취지로 학교 측에 진술했다.

시험지 유출 관련 이미지. 이번 사건과 관련 없음. [중앙포토]

진학상담실에는 유출 의혹이 제기된 세계지리 과목 외에도 전과목 시험지가 상자째 보관돼 있었다. 따라서 A학생이 다른 과목 시험지에도 손을 댄 것인지 아닌지는 향후 수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내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박스를 뜯고 그 안에 봉인된 봉투를 개봉했다면 아무리 원상태로 복구한다고 하더라도 흔적이 남을 수 있는데 왜 이 학교 관계자는 이를 확인하지 못했는지도 의문이다. 학교 측을 조사한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지난 3일이 수능 시험 원서 마감일이었고, 10일부터 수능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돼 3학년 교사 등이 개학 직후부터 모두 정신없이 바빠서 이런 부분을 민감하게 확인을 못 한 것 같다”며 “향후 감사나 수사를 통해 이 부분과 관련한 경위도 추가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A학생은 수능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돼 교육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다음 날인 지난 4일 학교에 자신이 시험지를 유출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그는 학교 측에 “학교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찾으러 갔다가 진학상담실에서 우연히 시험지를 발견해 촬영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처음부터 시험지를 훔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시험지를 발견해 유출했다는 주장이다.

이후 A학생은 시험지를 찍은 사진 파일을 모의평가 당일 아침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오픈채팅방에 올리며 문제 풀이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 시험지를 이상하게 여긴 한 민원인이 서울시교육청 국민신문고에 관련 내용을 제보하면서 수능 모의평가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경남교육청은 해당 학교가 어디인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6일부터 학교 측을 감사하고 있는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1차 조사 후 추가 확인 및 변동 사항에 대한 질문에 “현재 감사 중인 개별 사안에 대해 답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sung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