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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44화. 프랑켄슈타인

중앙일보

입력

인간이 만든 괴물, 괴물이 된 인간
한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그는 스스로 완벽한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꿈을 꾸었죠. 과학자는 묘지를 뒤져 시체의 재료를 수집했고, 전기의 힘으로 살려냅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요? 깨어난 것은 완벽한 생명체가 아닌 끔찍하고 추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이었습니다. 괴물은 순식간에 인간의 지식을 배우고 인간보다도 똑똑한 존재가 되어 갑니다. 나아가 여러 가지 요구를 해요. 과학자는 당황하면서 괴물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과연 과학자와 괴물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요?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최초의 SF 중 하나이자, 근대 공포물에 새로운 흐름을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 ‘프랑켄슈타인(1931)’ 스틸컷.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최초의 SF 중 하나이자, 근대 공포물에 새로운 흐름을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 ‘프랑켄슈타인(1931)’ 스틸컷.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역사상 최초의 SF 중 하나인 동시에, 근대 공포물에 새로운 흐름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메리 셸리가 완성한 이 작품은 작가가 여자라는 게 밝혀졌을 때 “스무 살도 안 된 여성의 병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기이한 산물”이라는 등의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엄청난 인기를 끌며 많은 사람에게 공포를 주었죠.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이라는 말도 생겼어요. ‘인간이,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데요. 더 말할 것도 없이 이 작품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터미네이터’나 ‘블레이드 러너’처럼 로봇이나 인조인간의 반란을 보여주는 무수한 작품, 현실에서 알파고와의 대결 같은 사례를 통해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할 때 인용되곤 합니다.

판타지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더욱 친숙합니다. 추하고 끔찍한 상황이나 괴물을 ‘프랑켄슈타인 같다’라고도 말하죠. 이때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은 소설에 나온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1931년에 만들어진 영화 속 모습에 바탕을 둔 것이니까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사실 괴물이 아니라, 과학자의 이름입니다. 생명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처음에는 연금술을 연구했지만, 나중에는 과학을 이용해 생명 창조에 성공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바로 그 사람이죠. 빅터는 괴물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은 그리스 신화 속의 거인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에 영혼을 부여했지만, 빅터는 이 창조물을 ‘혐오스러운 괴물’, ‘비참한 악마’라고 부릅니다.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를 거부한다는 뜻이죠.

구약성경에서 최초의 인간이 ‘아담’이라고 불렸듯이, 괴물은 자신도 이름을 얻기를 바랐지만, 빅터는 절대로 그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괴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했으며, 괴물에게서 도망쳤죠. 괴물은 홀로 세상에 대해 배우기 시작합니다. 버려진 건물에서 맹인과 만나 친해지면서 세상을 배우지만, 맹인의 가족은 괴물을 무서워하면서 쫓아냈죠. 강에 빠진 아이를 구했음에도 아이의 아버지가 쏜 총에 맞기도 했습니다. 인간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거부당한 괴물은 인간을, 무엇보다도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를 저주합니다.

빅터를 만난 괴물은 자신의 짝이 될 여성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하며 협박했고, 괴물이 무서웠던 빅터는 결국 자신이 만들던 여성 괴물을 없애버리죠. “너처럼 너의 짝도 사악할 것이다. 너희는 인류 전체를 위협할 종족이 될 것이다.” 빅터는 이렇게 주장했지만, 분노한 괴물은 그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결국 그의 결혼식 날 빅터의 아내를 해칩니다. 그리고 괴물과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죠. 마지막에 빅터는 사망하지만, 이는 괴물에게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그리하여 그는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도록 떠나버립니다.

이 작품을 환상적인 공포물이라고 봤을 때,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공포물의 제목에는 ‘무서운 존재의 이름’을 붙인다는 거죠. ‘드라큘라’나 ‘카르밀라’, ‘노스페라투’ 등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빅터의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본래 과학자 자신의 이름이죠. 그렇다면 빅터가 두려운 존재일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괴물을 낳은 것은, 그리고 그 괴물을 끔찍하고 무서운 존재로 완성한 것은 바로 빅터이니까요. 계몽주의자였던 작가, 메리 셸리는 책임 있는 정치로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지만, 동시에 무책임한 권력은 혼란을 만든다고 생각했다고 하죠. 과학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생명을 창조한 빅터는 위대한 과학자이지만 그 능력으로 괴물을 만든 것처럼, 과학이 세상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메리 셸리는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또는 디스토피아 소설로 알려진 작품『최후의 인간(The Last Man)』에서 흑사병의 위협 속에서도 인류가 전쟁과 광신적인 종교로서 자신을 멸망시키는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인간이 만든 괴물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괴물이라는 것. 왠지 코로나 19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연 파괴에 여념이 없는 요즘을 보는 것 같죠. 나온 지 200년이 넘은 프랑켄슈타인이 지금도 사랑받는 건 바로 우리 마음속의 괴물을 떠올리기 때문은 아닐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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