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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베이징에 증권거래소”…美·상하이방 견제 '이중포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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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저녁 중국 상하이의 한 식당 TV 모니터에 시진핑 국가 주석의 중국국제서비스무역교역회(CIFTIS) 개막식 연설이 방송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 저녁 중국 상하이의 한 식당 TV 모니터에 시진핑 국가 주석의 중국국제서비스무역교역회(CIFTIS) 개막식 연설이 방송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상하이, 선전에 이어 수도 베이징에 증권거래소가 들어선다. 미·중 갈등 속 경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띄운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2일 저녁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국제서비스무역교역회(CIFTIS) 개막식 연설에서 “베이징 증권거래소를 설립해 서비스 혁신형 중소기업의 주(主) 진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증권거래소가 생기면 1990년과 91년에 각각 설립된 상하이·선전 거래소에 이어 세 번째 본토 거래소다. 1891년 개장한 홍콩 증권거래소까지 더하면 중국은 4개의 거래소를 갖게 된다.

이날 시 주석은 “신삼판(新三板) 개혁을 심화해 베이징 증권거래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신삼판은 베이징에 있는 장외거래 시장으로 지난 2013년 중국 정부가 전국의 비상장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설립했다. 중국 당국은 신삼판을 실시간 거래가 가능한 장내 시장인 베이징 증권거래소로 바꾼 뒤 서비스형 디지털 벤처 기업을 집중 상장시킬 생각이다. 중국은 최근 미·중 갈등 속에서 첨단 서비스 기술 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시 주석이 연설한 CIFTIS의 타이들도 ‘디지털이 미래를 연다. 서비스가 성장을 촉진한다’다.

지난 2019년 7월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설립된 커촹판 주식시장 팻말.[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9년 7월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설립된 커촹판 주식시장 팻말.[로이터=연합뉴스]

시 주석이 직접 공언한 만큼 베이징 증권거래소는 이르면 2022년 설립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중국판 나스닥’을 표방한 상하이 거래소의 커촹판(科創板)도 시 주석의 2018년 11월 설립 방침 발표 후 1년도 안 된 2019년 6월 개설됐다.

베이징 증권거래소 설립 계획은 미국과의 갈등 고조와 중국 당국의 거대 기술기업(빅테크) 규제로 외국인 투자심리가 꺾인 가운데 나왔다. 지난달 2일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을 국가안보 위반 혐의로 조사한 후 중국은 자국 빅테크의 미국 증시 상장을 사실상 원천 차단했다. 여기에 중국 당국은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 기치 아래 전방위로 빅테크를 옥죄고 있다.

이에 해외 투자자가 이탈하며 상하이·홍콩 증시가 폭락했고, 중국 경제가 고립되며 경기가 침체될 것이란 불안도 커져 왔다. 3일 중국 금융정보업체 차이신(財新)이 공개한 8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7로 지난해 4월 이후 16개월 만에 기준점인 50 아래로 떨어졌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위축’을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 1일 발표된 차이신 제조업 PMI도 49.2로 16개월 만에 위축으로 돌아섰다.

지난달 24일 중국 상하이의 한 거리에서 여성 두명이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고 있다. 여성들 옆 전광판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표시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중국 상하이의 한 거리에서 여성 두명이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고 있다. 여성들 옆 전광판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표시되고 있다.[AP=연합뉴스]

베이징 증권거래소는 이런 상황에서 ‘자력갱생’의 돌파구를 열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 내에서 미국 증시를 대체할 새로운 기업 자금 조달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 주석은 새 증권 거래소 설립으로 미국 시장에서 기회가 줄어든 자국 기업인에게 (중국 내에서) 새로운 자금을 얻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도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베이징 거래소로 국내자본 시장 기능 강화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내 상장을 유도해 자국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WSJ은 “중국은 베이징 증권거래소 설립으로 자본시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한편에선 이미 성장한 기업을 길들이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북 간 경제력 격차 줄이기와 함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 등에 대한 견제 효과를 노린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 인민은행이 집계한 올 상반기 금융기관 외화 예금 증가율에서 베이징은 6.0%로 상하이와 선전(각각 14.8%), 광저우(11.7%), 항저우(12.6%) 등에 뒤진다. 경제평론가 류샤오보(劉曉博)는 “상하이·선전·홍콩 등 기존 거래소는 모두 남쪽에 있다”며 “남북 균형 관점에서 베이징 거래소 설립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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