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싫은 '문파 루리웹’ 尹 싫은 ‘펨코’…정치 흔드는 ‘커뮤’

중앙일보

입력 2021.09.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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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홍준표가 요새 잘나가긴 하나봄”, “이재명의 라이벌은 홍준표”. 국민의힘에서 대선 경선 ‘역선택’ 논란이 벌어진 지난달 30일, 2030세대 보수성향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이하 펨코)에선 이 같은 제목의 게시물들이 조회수 상위권에 올랐다. 해당 게시물에는 ‘무조건 야권 대선 후보는 홍준표’라는 의미의 신조어인 “무야홍”이라는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1일 친여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선 “이낙연이 될까봐 추미애 못 찍겠다는 분들”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어차피 한 후보가 (득표율) 50%를 넘지 못하면 (대선 경선은) 결선투표로 간다. 마음 놓고 추미애를 찍어라’는 내용의 해당 게시물에는 “추미애를 찍으면 추미애가 후보가 된다” 등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댓글 110여개가 달렸다.

에펨코리아 이준석 후보 후원 인증글. [에펨코리아 캡처]

에펨코리아 이준석 후보 후원 인증글. [에펨코리아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가 현실 정치에 뛰어들고 있다. 커뮤니티 내에서 적극적으로 당원가입운동이나 투표독려운동을 벌이고, 특정 후보에 대한 긍ㆍ부정 여론을 조직적으로 확산시키기도 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당선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여론이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다. 2030 남성층의 지지를 업은 이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중진들의 집중 견제를 받자, 젊은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국민의힘 당원가입 운동’이 벌어졌다. 당시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커뮤니티에 “당원 인증글”을 남기며 적극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했고, 이는 이 대표의 당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전당대회(6월 11일) 전후 한 달 간 가입한 당원은 약 2만3000명으로, 이중 40% 가량인 8958명이 30대 이하였다.

◇덩치 커진 ‘커뮤’…“대선 후보도 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1일 서울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OTE에서 열린 공정개혁포럼 창립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1.9.1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1일 서울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OTE에서 열린 공정개혁포럼 창립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1.9.1 국회사진기자단

커뮤니티에 대한 주요 정치인들의 주목도도 높아졌다. 이 대표는 출퇴근 시간 등을 이용해 각 커뮤니티의 주요 게시물을 매일 훑어본다고 한다. 국민의힘 당직자는 “당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을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다. 당 지지율이 낮은 2030 여성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방안이 있는지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주요 커뮤니티에서 주목도가 높은 게시물들을 실시간으로 종합 업데이트하는 사이트인 ‘이슈링크’, ‘썸업’ 등은 이미 정치권에서 여론의 집결지로 여겨지고 있다.

여당에서도 커뮤니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보수성향 커뮤니티 ‘펨코’에 “소통하고 싶다”는 게시물을 올린 뒤 친여 성향 커뮤니티 ‘딴지일보’에 “펨코에 회원가입을 해달라”며 지원사격을 요청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정치권에선 “커뮤니티 여론전이 중요하단 걸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각 대선 후보의 캠프에서도 커뮤니티가 여론 동향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캠프 단체대화방에선 후보의 행보에 대한 각 커뮤니티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그에 따라 평가와 수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한 야권 대선주자 캠프 홍보담당자는 “최근 후보가 한 발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커뮤니티에 많이 올라와서 후보가 있는 단체대화방에도 공유했다”고 전했다.

◇‘노사모’가 시초…정치 ‘커뮤’의 역사

노사모회원들이 2003년 민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장문기 기자

노사모회원들이 2003년 민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장문기 기자

전문가들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정치 커뮤니티의 시초로 꼽는다. 2000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온라인 팬덤으로 출발했던 노사모는 당시 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며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정치성향 별로 커뮤니티의 분화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커뮤니티 숫자가 늘어나면서 주요 정치인들의 ‘인증글’도 성행했다. 2010년 경기지사 후보였던 유시민 작가는 당시 친여 성향 커뮤니티였던 ‘MLB파크’(이하 엠팍)에 투표 독려 게시물을 남겨 화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2012년 18대 대선 후보 시절에 이어 2017년 19대 대선에서 당선된 직후에도 친여성향 커뮤니티에 감사 편지를 남기는 등 활발한 소통을 이어왔다.

2016년 최순실 사태 당시 국정조사 청문회장에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인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유저들의 실시간 제보를 토대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위증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후 박 의원은 해당 갤러리에 “여러분들의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며 감사 인사를 남겼다.

2017년 5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 올린 인증 동영상. 커뮤니티 캡처

2017년 5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 올린 인증 동영상. 커뮤니티 캡처

◇윤석열 싫은 ‘대깨준’, 이재명 싫은 ‘친문’

한 커뮤니티가 특정 정당에 대한 느슨한 지지성향을 보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커뮤니티 별로 선호하는 정치인이 뚜렷하게 갈리는 추세다. 송경재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최근 주요정당들이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를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 포함시키면서 후보 개인에 대한 선호도가 현실정치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같은 당이라도 커뮤니티에 따라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엔 ‘민주당 지지’로 결집했던 친여성향 커뮤니티들은 최근 ‘친문-반이재명’과 ‘친이재명’으로 갈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친문 성향 커뮤니티로 꼽히는 ‘루리웹’의 경우,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관광공사에 임명해 논란에 휩싸였던 황교익씨와 관련해 지난달 13~19일 ‘황교익’ 키워드로 600개 넘는 비판 게시글이 올라왔다. 반면 친여 성향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같은 기간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측이)총결집해 이 지사와 황교익씨를 물어뜯는다”, “황교익 잘한다” 등 이 지사를 두둔하는 게시글이 조회수 상위권에 올랐다.

야권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 변화에도 이 같은 커뮤니티 여론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른바 ‘투스톤(윤석열-이준석)’ 갈등 격화로 이 대표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2030 남성중심 커뮤니티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이 대표를 측면 지원한 홍준표 의원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말도 나온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목도가 높은 게시물을 종합해 보여주는 사이트 '이슈링크' 캡처. 1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커뮤니티 별 반응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슈링크 캡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목도가 높은 게시물을 종합해 보여주는 사이트 '이슈링크' 캡처. 1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커뮤니티 별 반응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슈링크 캡처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정치활동이 늘면서 이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론형성 기능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성해 티브릿지 대표는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사회 현안에 대해 입장을 정리할 때 커뮤니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지지자들과 정치인이 서로 호흡하고 소통하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온라인 커뮤니티의 특성인 익명성을 방패로 “의견의 극단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송경재 교수는 “한 커뮤니티 안에 갇히면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의견은 보지 않게 될 수 있다. 건전한 토론보다는 강성 지지자의 자극적인 의견이 주목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성해 대표는 “외부의 주장이나 의견에 귀를 닫고, 무작정 정치인을 추종하는 ‘탈레반’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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