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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노조 이권다툼 닮아가나”…‘경찰의 노조’ 직협 갈등 증폭 [이슈추적]

중앙일보

입력

경찰 이미지. 연합뉴스

경찰 이미지. 연합뉴스

“사사건건 시비와 트집을 잡고 있다.” 

경남 소재 한 경찰서의 직장협의회 회장을 맡은 A경위가 최근 경찰 내부망에 올린 글의 일부다. 그는 “전국 직장협의회(직협 연대)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진 사람들이 불복해 ‘경찰직협민주협의회’(경민협)를 만들었다”면서 경민협의 태도를 비판했다.

경찰 내부에서 조용히 진행되던 직협 연대와 경민협의 갈등은 최근 경찰 구성원들의 갑론을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조’격 단체 둘러싸고 경찰 ‘시끌시끌’  

직협은 2019년 11월 ‘공무원 직장협의회법’이 입법되고 지난해 6월 전국 경찰관서별로 설립된 단체다. 지휘부를 견제하고 경찰관의 인권 보호와 권익 향상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가입 대상은 경감 이하 하위직이다. 국가공무원법에 의거해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이 금지된 경찰 조직 내에서 일종의 ‘노조’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A경위는 경남 소재 경찰서의 노조위원장 격인데, 그 반대 세력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직협이 합법적·공식적인 대표 조직인데 다른 사조직이 활동을 견제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경찰 내부망 댓글에는 이에 대한 옹호 또는 반대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남의 한 경찰서의 직협위원장이라는 경찰관은 “회원 구성과 조직 목적 등 실체가 불분명한 경민협이 전국 직협과 경쟁한다면서 한국노총 공무원연맹과 양해각서(MOU)를 맺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우리가 진짜, 너희가 가짜 하지 말고 발전적 활동 기대한다” “남 비난할 시간에 직원 처우 개선과 복지에 힘써라” “파벌 싸움이 직원들을 지치게 한다” 등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부는 과거 ‘폴네띠앙’과 ‘무궁화클럽’이 경찰 내부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역할을 했던 것을 언급하며 현재의 논란을 비판하기도 했다.

경찰 로고. 연합뉴스

경찰 로고. 연합뉴스

“노조 이권 다툼 닮아가” vs “평가 일러”

현재의 갈등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게 경찰 안팎의 분석이다. 한 30대 경찰관은 “직협 가입률이 높은 곳도 있겠지만, 아직까진 경찰 사이에서도 상황을 관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경찰관은 “법적으로 직협은 각 서나 청 단위로 꾸릴 수 있고 전국 단위로 연대하면 안 된다”면서 “하지만, 본인들이 임의적으로 연대하며 서로 대표라고 주장하니 정당성에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 입장에선 대표성 없는 군소조직 난립, 의미 없는 적통 갈등…꼭 정치권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일선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 간부는 “소명의식보다 이권에 몰두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같다”며 “수뇌부 견제는커녕 하위직 간 다툼으로 오히려 경찰 단합을 저해하는 듯”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아직은 단체에 대해 왈가왈부하긴 이르다고 본다”며 “서로 견제하는 과정을 거치다 결과적으로 경찰 조직 발전에 도움을 줄진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로고. 뉴스1

경찰 로고. 뉴스1

“본연의 설립 목적 상기해야” 

전문가들도 각 단체가 이권 다툼보단 설립 취지에 맞게 활동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설립 목적대로 구성원 복지와 근로 환경 개선에 힘쓰고 의견을 모아 합의를 끌어내야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곽 교수는 또 “개중엔 잇속을 챙기려는 특정 소집단이나 개인들이 있을 것”이라며 “투표나 감찰 등 내부 규정을 둬 특정인이 일방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은 경직된 조직인 데다 사기업과 같은 노조 결성이 안 돼 근무 여건 등에 대한 공식적 의사 수렴 절차가 미약하다”며 “이런 조직 문화가 파벌을 만들고 갈등을 부추기는 근본적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의사결정 과정을 공론화해 직원들에게 합리적으로 이해시키는 등 경찰 자체 ‘소통 민주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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