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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불판 삼겹살 위험해요” 시골살이 도시청년, 이색 리포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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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도시 청년들이 ‘의성살이’를 하면서 석면 지붕 문제 등 다양한 생활 속 문제를 찾아냈다. 학생들은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개선책도 제시했다. [사진 의성군]

도시 청년들이 ‘의성살이’를 하면서 석면 지붕 문제 등 다양한 생활 속 문제를 찾아냈다. 학생들은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개선책도 제시했다. [사진 의성군]

“버스정류소를 두고 인근 그늘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불판 삼아 삼겹살을 구웠다고 했다.”

서울 등 수도권 대학생들이 7주간 ‘시골살이’ 후 작성한 리포트에 담긴 내용이다. 성균관대 이정환, 경희대 오지우, 중앙대 김가영 등 대학생 12명은 7월 5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지방소멸 위험 지역인 ‘경북 의성군’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사회적협동조합 menTory 주최, 의성군의 후원을 받아 ‘의성살이’를 했다. 이들은 의성에 머물며 다양한 생활 속 문제를 찾아 리포트로 작성했다. 이광대 의성군 청년정책 계장은 “도시 청년들의 리포트엔 시골 지자체가 가진 사소하지만 해결이 애매한 각종 생활 속 문제. 그리고 톡톡 튀는 이색 해결책까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박채림·이정환·백노아씨는 버스정류소를 주목했다. 의성군의 버스 배차 간격은 기본 1시간. 버스정류소는 의자가 잘 설치돼 있는 등 시골에선 쉼터 같은 곳이다. 그런데 문제가 보였다. 무더위가 이어질 때 일부 주민들이 버스정류소 인근 그늘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문제는 버스정류소의 구조 때문. 여름이지만 온열의자가 설치된 곳이 있고, 아크릴 천장에 삼면이 꽉 막힌 승강장도 다수 있었다. 학생들은 리포트에 버스정류소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 아이디어를 냈다.

이미 지어진 버스정류소를 계절에 따라 뜯고, 새로 지을 순 없다. 그래서 ‘접었다 폈다’를 하자고 했다. 우선 의자는 정류소 뒤편에 접이식 의자를 설치, 평소에는 접어뒀다가 앉고 싶으면 펼쳐서 이용하자고 했다.

도시 청년들이 ‘의성살이’를 하면서 석면 지붕 문제 등 다양한 생활 속 문제를 찾아냈다. 학생들은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개선책도 제시했다. [사진 의성군]

도시 청년들이 ‘의성살이’를 하면서 석면 지붕 문제 등 다양한 생활 속 문제를 찾아냈다. 학생들은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개선책도 제시했다. [사진 의성군]

‘쿨링의자’에 대한 사례도 들었다. 기존 의자 위에 열전도율이 낮은 소재의 덮개를 덮었다가, 계절이 바뀌면 다시 접어 치우는 식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바람을 막는 아크릴 벽 대신 레일문 폴딩도어, 스크롤 햇빛 가리개를 설치해 계절에 따라 응용하자고도 했다.

이유경, 임서연, 오예은씨는 빈집 지붕을 유심히 봤다. 빈집 대부분이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라는 점 때문이다. 석면은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 물질이다. 학생들은 주민들이 왜 적극적으로 철거 요구 등을 하지 않는지가 궁금했다.

인터뷰를 해보니 석면 슬레이트 지붕의 유해성,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일부 주민들은 “이전에 슬레이트를 불판 삼아 삼겹살도 구워 먹었는데도 괜찮았다. 굳이 철거할 필요성이 있느냐”고도 했다. 학생들은 스케치북에 석면의 유해성을 쉽게 표현한 그림을 그려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등 적극적으로 심각성에 대해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과 직결한 버스 하차 문제를 꼬집은 학생들도 있다. 오지우, 김정원, 최송이씨는 노인들이 버스 정차 전에 이상하게 급히 일어나는 모습을 목격했다.

알고 보니 노인들 사이에 빨리 내리려는 습관이 있었다. 60년대 의성지역 버스는 늘 북적였다. 제때 버스에서 내리지 못할까 봐 미리 서둘러야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창문으로 옷 보따리를 먼저 내리고 급하게 내릴 때가 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의 한 단면인 셈이다.

학생들은 ‘하차문 신호등’을 문제 해결 아이디어로 냈다. 빨간색, 초록색으로 구성한 신호등을 버스 안에 설치, 신호등 색에 맞춰 하차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식이다. ‘하차문 타이머’ 아이디어도 더했다. 의성군은 학생들의 다양한 생활 속 문제와 개선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에 반영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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