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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깨지게한 '애마부인' 열풍…문닫은 서울극장의 4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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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관일인 8월 31일 서울극장 매표소 및 스낵코너는 평소보다 이른 오후 4시50분경 마감했다. [나원정 기자]

폐관일인 8월 31일 서울극장 매표소 및 스낵코너는 평소보다 이른 오후 4시50분경 마감했다. [나원정 기자]

2004년 서울극장. 이후 2017년 대대적인 리뉴얼로 지금의 모습이 됐다. [중앙포토]

2004년 서울극장. 이후 2017년 대대적인 리뉴얼로 지금의 모습이 됐다. [중앙포토]

1993년 서울극장 전경. [중앙포토]

1993년 서울극장 전경. [중앙포토]

31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 개관 43년 만에 문을 닫는 영화관의 마지막 상영작은 ‘홀리모터스’(2012)였다. 프랑스의 괴짜 천재 감독 레오 카락스가 단짝 배우 드니 라방과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파리 곳곳에 ‘영화’란 무엇인가를 새겨낸 영화다. 종일 비가 왔던 이날 서울극장 매표소는 오후 4시 50분 지하 8관에서 시작된 ‘홀리모터스’ 상영을 끝으로 여느 때보다 일찍 ‘마감’ 표지를 내걸었다. 지난 11일부터 서울극장은 감사 의미의 고별 상영회 ‘고맙습니다 상영회’를 열고 매일 선착순 무료 영화 상영을 해온 터다. ‘홀리모터스’ 마지막 상영엔 60여명 관객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장내에 불이 켜지자 아쉬운 듯 기념촬영을 하는 관객도 보였다.

31일 폐관 서울극장 사진으로 본 43년 #종로3가 영화관 전성시대 역사 속으로 #80년대 달군 '애마부인' '인디아나 존스' #김수환 추기경 '…전태일' 영화 보러 찾아

지난 7월 서울극장은 홈페이지에 “약 40년 동안 종로의 문화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다”며 “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는 시대를 선도할 변화와 도전을 준비 중”이라 밝혔다.

서울극장은 영화제작자‧감독으로 활동한 ‘충무로 대부’ 곽정환 회장의 합동영화사가 재개봉관이던 종로 세기극장을 1978년 인수해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하며 재탄생했다. 단성사‧피카디리 등과 종로 3가 흥행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대기업 멀티플렉스 등장 속에 어려움을 겪던 중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최신 개봉작뿐 아니라 독립‧예술영화관으로 확장하며 여러 영화제의 보금자리가 된 서울 영화관의 산 역사다. 서울극장 지난 43년을 사진 기록으로 돌아봤다.

1978년 9월 17일 정소영 감독의 '마지막 겨울'로 개관한 초기의 서울극장 모습이다. [사진 서울극장]

1978년 9월 17일 정소영 감독의 '마지막 겨울'로 개관한 초기의 서울극장 모습이다. [사진 서울극장]

1978년 추석 개관작 ‘마지막 겨울’  

“합동영화사가 인수한 세기극장이 면모를 쇄신하고 「서울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17일 추석을 기해 개관한다.” 1978년 9월 16일, ‘서울극장’ 이름이 실린 중앙일보 첫 기사다. 개관에 앞서 15일 극장에서 영화인을 초청한 개관 파티를 열었단 소식과 함께였다.
당시 스크린 1개로 시작한 서울극장 개관작은 정소영 감독의 ‘마지막 겨울’. 배우 이영하‧유지인‧김동현이 주연을 맡아 대학시절 친구였던 세 남녀가 약혼과 임신, 실종, 극적 탈출 등 드라마틱한 사연 속에 이어간 질긴 삼각관계를 그렸다. 이 영화가 12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서울극장도 개봉관의 위상을 굳혔다.

80년대 달군 ‘애마부인’ ‘포스트맨은…’ ‘인디아나 존스’  

1980년대 서울극장엔 히트작이 잇따랐다. 첫 테이프는 배우 안소영을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이 끊었다. 1982년 2월 6일 서울극장에서 개봉해 무려 4개월간 장기 상영하며 31만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당일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1982년 영화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홍보 간판이 걸린 서울극장에 관객이 몰려들었다. 영화 개봉명은 이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로 바뀌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1982년 영화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홍보 간판이 걸린 서울극장에 관객이 몰려들었다. 영화 개봉명은 이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로 바뀌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같은해 여름 합동영화사가 직접 수입해 개봉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40만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 배우 제시카 랭, 잭 니콜슨의 이 영화는 미국 사회 이면의 현실을 냉혹하게 그린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작가 제임스 M 케인의 동명 소설이 토대로, 한국 개봉 당시엔 관능적인 영화로 홍보돼 화제가 됐다. 원래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란 제목으로 개봉하려 했지만, 체신부 항의로 ‘우편배달부’를 ‘포스트맨’으로 바꿨다.
1985년엔 영등포 연흥극장과 나란히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개봉명 ‘인디아나 죤스’)가 서울극장에서만 60여만 관객을 모으며 그해 외화 정상에 올랐다.

‘첩혈쌍웅’이 문연 복합상영관 시대  

서울극장은 1개 스크린으로 출발해 1989년 상영관을 3개로 늘린 복합상영관 '서울시네마타운'으로 거듭났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서울극장은 1개 스크린으로 출발해 1989년 상영관을 3개로 늘린 복합상영관 '서울시네마타운'으로 거듭났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1989년 서울극장은 칸느‧베니스‧아카데미 등 3개관을 갖춘 복합상영관 ‘서울시네마타운’으로 거듭난다. 재개관작은 이장호 감독의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찰리 쉰 주연의 ‘메이저 리그’, 오우삼 감독, 배우 주윤발 콤비의 ‘첩혈쌍웅’이었다. 이후 2003년 스크린을 확충해 모두 11 개관의 멀티플렉스로 성장했다. 이후 1998년 최초 대기업 멀티플렉스 CGV강변으로 시작된 대형 멀티플렉스 프랜차이즈들과 경쟁하며 2017년 대대적 리뉴얼로 관객편의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보러 간 극장

서울극장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관람하러 간 김수환 추기경(왼쪽 두 번째)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맨왼쪽) 모습이다. [중앙포토]

서울극장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관람하러 간 김수환 추기경(왼쪽 두 번째)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맨왼쪽) 모습이다. [중앙포토]

1995년 12월 3일엔 김수환 추기경이 노동 열사 전태일의 삶을 그린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러 어머니 이소선 여사 등과 찾은 곳도 서울극장이었다. 노동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김 추기경은 영화가 완성되기 전 “전태일은 우리 모두가 마음의 빚을 진 청년이다. 완성되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함께 꼭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제작사에 전했다고 한다. 1970년 스물둘에 세상을 떠난 노동운동가의 이야기는 그해 11월 18일에 개봉해 3주만에 15만 관객을 모았다.

‘해리 포터’ 열풍VS 007 보이콧  

2001년 12월 16일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러 서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다. [중앙포토]

2001년 12월 16일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러 서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심장부 서울극장에선 할리우드 영화들의 엇갈린 운명도 목격할 수 있었다. 동명 원작 소설의 인기 속에 2001년 12월 14일 개봉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극장가에 마법 열풍을 일으켰다. 직배사 워너브러더스에 따르면 개봉 당시 이 영화는 전국 4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했다. 당시 뉴스엔 서울극장에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이 관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룬 풍경이 보도됐다.

2003년 1월 서울극장에서 007영화 상영 반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모습이다. [중앙포토]

2003년 1월 서울극장에서 007영화 상영 반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모습이다. [중앙포토]

2003년 시민단체와 네티즌이 첩보 액션 영화 ‘007 어나더데이’ 안 보기 운동 피켓시위를 벌인 곳도 서울극장이다. 2002년 12월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공개 전부터 휴전선이 불바다가 되는 장면부터 한반도 상황에 대한 왜곡된 묘사가 겹쳐 비판 여론이 컸다. 결국 개봉 3주 만에 흥행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전국 개봉관에서 하차했다. 냉혈한 북한군 장교 역을 제안받은 배우 차인표는 시나리오에 문제를 제기하며 할리우드 진출을 포기한 것이 알려지며 ‘의식 있는 배우’라는 평판을 얻었다.

2000년 추석연휴 마지막날 서울극장 앞 관객들. [중앙포토]

2000년 추석연휴 마지막날 서울극장 앞 관객들. [중앙포토]

1995년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상영 당시 서울극장 전경.[중앙포토]

1995년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상영 당시 서울극장 전경.[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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