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30일 여전히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야당과 언론단체들은 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진행된 당 긴급현안보고에서 “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묻는 모든 절차를 앞으로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열린 당 최고위에선 조수진 최고위원이 “문 대통령은 (여당의) 강행처리 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셔야 한다. 침묵으로 버틴다면 언론보도 자체를 덮어버리기 위해 여당, 2중대와 짜고 치는 눈속임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압박했다.
한국기자협회·관훈클럽 등 언론 관련 7개 단체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거대 의석을 앞세워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문 대통령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엔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밝힐 수 밖에 없다. 그 방식 중 하나가 거부권 행사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돼 정부로 넘어온 법안에 대해 15일 내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 행사 여부에 따라 개정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찬반 입장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야당 시절 언론 자유를 옹호했던 발언과 맞물려 ‘내로남불’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언론 자유를 억압한 대통령이란 평가가 나올 수 있고, 민주당과 함게 ‘독선·독주’ 프레임에 갇힐 가능성도 크다. 반대로 거부권을 행사하면 임기 말 당·청 갈등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힘든 딜레마 상황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국회에서 원만하게 여야가 합의하는 상황을 바라고 있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지난 27일 방송 인터뷰에서 “최선의 것이 아니라고 해도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차선을 잘 만들어주는 게 민의의 전당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30일 오후 국회를 찾아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와 모종의 논의를 나눠 눈길을 끌었다. 이 수석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냐는 질문 등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고 웃음으로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