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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나비 '국접' 될 뻔했다, 꼬리명주나비의 예쁜 맵시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중앙일보

입력

꼬리명주나비

꼬리명주나비

아주 오묘한 나비가 폴락폴락 나르는 걸 봤습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만,

숨죽여 한참동안 나비를 지켜봤습니다.

길쭉한 꼬리 맵시가 여간 고운 게 아니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나비지만
맵시에 반해 꼭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나비가 바닥에 앉기를 기다리면서요.

사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면
나비가 경계를 푸는 경험을 몇 번 한 적 있습니다.

다행히도 그 경험이 이번에도 들어맞았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 친구가 바닥에 앉은 겁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숨죽이며 한컷을 찍었습니다.

꼬리명주나비

꼬리명주나비

나비를 찍은 후 이강운 박사를 만났습니다.
이 박사가 애벌레를 제게 보여 줬습니다.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라고 했습니다.

애벌레가 그다지 아름답진 않았지만,
꼬리가 붙은 이름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전에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이 박사에게 보여줬습니다.

순간 이 박사가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하. 이 애벌레가 바로 이 친구예요."

이름도 모르고 찍은 나비가
바로 꼬리명주나비였던 겁니다.

꼬리명주나비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변하고 있는 친구도
이 박사가 보여줬습니다.
실로 나뭇잎에 몸을 붙인 상태였습니다.
번데기에서 십여일 정도 있으면 나비가 나온다면서
이 박사가 꼬리명주나비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학명의 세리키누스는 고운 명주를 뜻하고,
뒷날개 끝에 길게 나 있는 돌기가 마치 꼬리 같아
꼬리명주나비라 이름 지어진 겁니다.
이 친구는 국접(國蝶),
즉 나라의 나비로 지정될 뻔했던 나비입니다.
우리나라에 흔히 있었던 종인 데다
아주 이쁘니 나라의 나비로 정하려고 했었던 거예요.
사실 이 친구를 오래전에
일본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져갔어요.
훔쳐간 거죠.
이리 아름다운 꼬리명주나비가
일본에도 있다고 주장하려던 거였죠.
그런데 지금은 일본에서
외래종이라며 골칫덩어리가 됐어요."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 국접으로 지정되지 않은 거죠?" 
"왜냐하면 국접이라고 하면 고유종에 가까워야 하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좀 특이해야 하는데
다른 데 많이 있다고 하니 정해지지 않은 거죠."

"그러면 지금 국접으로 정해진 게 있나요?"
"없습니다."
"국접 지정 필요성은 있습니까?"
"있죠. 사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비를 보면 다 좋아하잖아요. 

TV 광고에도, 패션에도, 영화에도, 음악에도 늘 소재로 쓰면서
갑자기 마음에 안 들면 벌레로 치부해 버리니…."

"박사님이 속으로 생각하시는 국접은 뭡니까?"  
"단연 꼬리명주나비입니다.

제 캐릭터도 꼬리명주나비를 캐릭터화해서 만든 겁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또 일본으로 끌려간 또 슬픈 역사도 있고 그래서
애정이 많이 가는 나비입니다. "

쥐방울덩굴 열매

쥐방울덩굴 열매

국접될 뻔한 꼬리명주나비 이야기를 듣고 보니
꼭 제대로 나비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박사에게 나비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비를 찾아달라는 요청에
이 박사가 쥐방울덩굴 이야기를 했습니다.
"얘의 먹이 식물이 쥐방울덩굴이에요.
이게 굉장히 독성이 강해서
시골에서는 '까마귀오줌통'이라고 하죠.
지린내가 나니 그리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식물을 먹는 곤충이 거의 없는데

꼬리명주나비가 이 식물을 먹어요.
요즘 잡초라며 이 식물을 마구 베어버리니
덩달아 꼬리명주나비도 없어지고 있는 겁니다.
제가 사실 이 친구들 때문에 쥐방울덩굴을 심어놓았어요.
한번 같이 가봅시다.
필시 거기에 나비가 있을 거예요."

꼬리명주나비

꼬리명주나비

 가서 보니 진짜 꼬리명주나비가 있었습니다.
이제 갓 우화한, 우아한 수컷이었습니다.
흰 명주에 수묵을 그린 듯한 무늬,
과하지 않게 살짝 포인트를 준 것같은 붉은 무늬가 단아합니다.
게다가 맵시 있게 뻗은 뒷날개 돌기가 수려합니다.

꼬리명주나비

꼬리명주나비

꼬리명주나비

꼬리명주나비

하늘거리는 날갯짓을 볼작시면
가히 국접으로 지정될만하다 싶습니다.
이러니 오래전부터
이 친구를 국접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었나 봅니다.

과연 꼬리명주나비가 '국접될 뻔했던'이 아닌,
국접인 날이 올까요?

자문 및 감수/ 이강운 서울대 농학박사(곤충학),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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