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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은 훨씬 잘해야? 남고 22개, 여고 3개 자사고 성비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19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숭문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숭문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가뜩이나 여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가 적었는데….”

지난 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학원가에서 만난 중학생 최모(14)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진학을 준비한다는 그는 “남녀공학이었던 한가람고마저 일반고로 바뀌면서 선택의 폭이 더 좁아졌다”며 “남아있는 자사고라도 가기 위해선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엄마가 당부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사고 남고 22개>여고 3개

전국 일반고, 자사고 남녀공학 구성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전국 일반고, 자사고 남녀공학 구성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최근 서울 목동과 대치동 등 학원가에선 이른바 ‘자사고 성비 불균형’ 문제를 두고 고입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들이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목동에 위치한 남녀공학 자사고 한가람고가 일반고 전환을 신청하면서 걱정은 더 커졌다. 여학생이 갈 수 있는 자사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사고에 대한 수요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 여학생들의 선택권 제한에 대한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가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41개 자사고 중 여고는 단 3개교에 불과하다. 남고는 22개교, 남녀공학은 16개교다. 반면 일반고는 남고(306개교)가 여고(325개교)보다 적었다. 서울 소재 21개 자사고로 한정하면 남녀공학의 비중은 더 적었다. 남고가 14개교인 상황에서 여학생이 갈 수 있는 자사고는 7개교(공학 5개·여고 2개)였다. 여학생 입장에선 남학생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자사고의 선택지가 훨씬 적은 셈이다.

남녀 비율 2:1로 정해 뽑는 자사고도

서울 소재 자사고 남녀공학 구성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서울 소재 자사고 남녀공학 구성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남녀공학 자사고 중에는 남녀 학생 선발 비율을 2대 1로 정한 곳도 있다.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씨가 설립한 상산고는 2022학년도 신입생으로 남학생 224명과 여학생 112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당초 남고였던 상산고가 지난 2003년 자사고로 전환하면서 여학생을 뽑기 시작한 이래 이 비율은 19년째 이어지고 있다.

상산고 입학관리부 관계자는 “전환 당시에도 원래 남학생만 뽑으려다가 화장실 등 학교 시설 교체에 어려움이 있어 여학생을 더 적게 뽑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성비에 따른 선발 인원은 학교장의 권한”이라며 “아직 별다른 문제의식은 없다”고 밝혔다.

“자사고 가려면 여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자사고 성비 구성.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자사고 성비 구성.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자사고 재학생의 남녀 비율에서도 ‘성비 불균형’은 존재했다. 동일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41개 자사고에 재학 중인 학생 3만5287명 중 여학생은 1만192명으로 전체에서 28.9%에 불과했다. 목동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권모(49·남)씨는 “학부모 사이에서 전국단위 자사고에 들어가면 꼴찌를 하더라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며 “전국단위 자사고에도 남학생 비율이 높아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여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자사고의 수가 적다 보니 남녀공학 자사고의 경쟁률이 더 높아진다는 불만도 있다. 남녀공학 자사고 이대부고를 졸업한 정모(19·여)씨는 “(2018년) 입학 당시 남학생은 정원 미달이라 면접도 안 봤고 여학생은 정원이 초과해 경쟁률이 높았다”고 말했다. 전국단위 자사고인 상산고를 1지망으로 꿈꿨던 양모(14·여)양은 “남녀 비율을 2:1로 뽑는 상산고는 여학생이 합격하기 힘들다”며 “주변에서 여자가 자사고에 가려면 남자보다 더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여학생 학교 선택권 늘려야”

이러한 성비 불균형의 원인에 대해 이재덕 한국교원대 교수는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전국 자사고 100개’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전국에서 자사고가 대폭 증가했다”며 “자사고 전환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남고가 여고보다 많아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여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권씨는 “남녀가 똑같은 선상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모집 인원에 성비를 다르게 두는 비율제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 교육혁신과 관계자는 “자사고의 성비 불균형에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교육청이 남고에 남녀공학으로 바꾸라고 강요할 권한은 없다”며 “고교체제 안정화 측면에서 2025년까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의 모습. 뉴스1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의 모습. 뉴스1

이에 대해 시한부 운명에 놓인 자사고의 과도기적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여학생의 선택권이 원래 적은 상황에서 남녀공학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서 선택권이 줄어드는 체감 효과는 더 크다”며 “자사고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는다면 여학생도 남학생처럼 여러 자사고 중에서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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