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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서울극장, 추억 인파 주말 수백명 몰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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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9일 오전 서울극장을 찾은 시민들이 영화 관람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김지혜 기자

29일 오전 서울극장을 찾은 시민들이 영화 관람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김지혜 기자

“20년 전에도 이렇게 줄이 길었는데…”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 앞. 영화 관람을 위해 줄 서 있던 40대 남성 최모씨의 회상이다. 그는 “예전에 인기 있는 영화표를 구하려면 100m 이상 길게 줄 서야 했다”며 “줄 서는 와중에 매진되면 웃돈을 주고 암표를 사서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1979년 문을 연 서울극장이 오는 31일 유럽 영화 ‘홀리 모터스’(2012년) 상영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한다.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관객을 빼앗긴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이 심화하면서다.

‘마지막 주말’인 이날 관객들은 떠나는 서울극장을 배웅하는 듯했다. 일본 코미디 뮤지컬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년 개봉)이 상영된 이날 극장은 오전부터 수백 명의 인파로 붐볐다. 극장 측은 이달 11일부터 31일까지 주중 100명, 주말 200명에게 선착순으로 무료 티켓을 제공한다. 극장 관계자는 “이번 주말엔 극장 문을 열기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렸다”고 말했다.

서울극장은 1980~90년대 한국 영화 부흥기와 궤를 같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극장을 운영한 합동영화사는 247편의 한국 영화를 제작했으며 약 100편의 외화를 수입·배급했다. 종로 극장가가 쇠퇴한 이후엔 상영 작품을 다양화해 독립·예술 영화관으로서 입지를 넓혔다.

영화 ‘어린 왕자’(2007)를 연출한 최종현 감독은 “과거엔 영화가 한 극장에서만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서울극장에서 ‘사랑과 영혼’(1990) 등 유명 외화를 많이 상영했다”며 “한국 영화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인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니 애석하다”고 아쉬워했다.

40대 고모씨는 “대학교 때 ‘비트’(1997)를 보러 갔는데 배우 정우성이 인사하러 왔다”고, 50대 신모씨는 “오징어 등 간식을 팔던 극장 앞 노점상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서울극장의 과거를 떠올렸다. 자매라고 밝힌 두 20대 여성은 “엄마가 상경해 처음으로 영화를 본 장소가 곧 없어진다고 해서 들렀다”며 “입구나 매표소 등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이색적”이라고 말했다.

합동영화사는 향후 영화를 비롯한 여러 콘텐트 투자·제작과 새로운 형태의 극장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극장 건물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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