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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사전청약, ‘입주 시간표’ 철저히 관리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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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31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정부가 사전청약 물량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수도권 신규 택지 민영 아파트와 2·4 대책을 통해 공급하기로 했던 아파트 일부를 올해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사전청약 형태로 조기 공급한다. 또다시 달아오르고 있는 주택시장을 식히기 위한 고육책이다. 사전청약은 일반적인 아파트 선(先)분양 시점(본청약)보다 1~2년 앞서 청약을 진행하는 제도다.

청약 시점을 단순히 1~2년 앞당기는 것이지만, 주택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패닉 바잉’(공포 매수)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정부는 패닉 바잉으로 집값이 급등한 지난해 3기 신도시의 물량 일부를 올해 7월부터 신혼부부 등에게 사전청약 형태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질 좋은 아파트를 싸게 분양할 테니 기존 주택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는 의미다.

시간표 틀어지면 전세난민으로 전락
당첨자 정신·경제적 고통 작지 않아

이 같은 사전청약은 그러나 바람직한 주택 공급 형태는 아니다. 선분양 자체가 여러 문제가 있어 문재인 정부 초기엔 아파트를 일정 수준 이상 건축한 뒤 분양하는 이른바 후(後)분양을 강제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선분양도 문제가 많은데, 이보다 1~2년 앞서 나오는 사전청약이 바람직한 형태일 리 없다. 당장 청약자들은 자신이 입주할 아파트의 모형조차 보지 못하고 청약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고삐 풀린 집값을 보면 정부의 사전청약 확대 방안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집값 안정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 없는 만큼 조금이라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해보는 게 나을 수 있다.

다만, 철저히 준비해 부수적인 피해나 부작용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전청약은 구조적으로 청약부터 입주까지의 시차가 크기 때문에 ‘입주 시간표’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전세 난민을 양산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선분양은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토지보상 문제나 주택 인허가가 다 끝난 상태에서 청약을 하기 때문에 청약 직후 착공이 가능하다. 따라서 입주 시기도 청약 때 정해진다. 입주 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시행사나 공사를 맡은 시공사가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사전청약은 토지보상조차 끝나지 않은 땅에 짓는 아파트를 미리 공급하는 것이어서 토지보상이나 주택 인허가가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면 당첨자의 입주 역시 미뤄지게 된다. 이걸 단순한 문제라고 취급해서는 안 된다. 사전청약 당첨자는 입주 때까지 계속 전·월세를 살아야 하는데, 본청약이 늦어지면 입주 시기에 맞춘 전·월세 계약이 꼬이게 된다.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경험상, 본청약이 한 번 미뤄지면 기약 없이 계속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경기도 하남 등지에서 사전청약(예약)으로 아파트를 대거 공급했지만, 절반 정도는 토지보상 지연으로 본청약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입주도 그만큼 늦어졌다. 심지어 사전청약 당첨 이후 10년 만에 입주한 사례도 있다. 그러다보니 2009~2010년 사전청약 당첨자 1만3398명 가운데 본청약에 나선 당첨자는 절반도 안 되는 5512명에 불과했다. 전세 난민으로 떠돌다 어렵게 잡은 내 집 마련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물론 경제적 피해도 작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는 결국 사전청약제를 폐기했다.

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부는 공급 물량이 줄더라도 지난해 약속한 대로 ‘토지보상이 끝난 곳에서만’ 사전청약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토지보상이 끝났다고 해서 걸림돌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사업 지연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금이라도 주택시장이 왜 이렇게 됐는지 되짚어보고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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