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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서 찾은 무기교의 미학, 미래 속 과거를 보여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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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19면

‘세계 디자이너 100인’에 뽑힌 양태오

양태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올봄 론칭한 가구 브랜드 ‘이스턴 에디션’ 제품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양태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올봄 론칭한 가구 브랜드 ‘이스턴 에디션’ 제품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그는 과거를 현재로 옮기는 데 탁월하다.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힌트를 얻어 현대적인 맥락으로 잘 디자인한 공간에는 그의 모토인 ‘미래 속 과거’가 잘 표현돼 있다. 이는 현대와 전통을 혼합하는 그의 접근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세계 3대 아트 서적 출판사로 꼽히는 파이돈 프레스(PHAIDON Press)가 ‘세계 최고의 동시대 인테리어 디자이너 100인’을 조명하면서 양태오(40) 디자이너를 선정한 이유다. 파이돈 프레스는 2~3년에 한 번씩 전 세계 권위 있는 심사위원 90명과 함께 혁신적인 100인의 디자이너·예술가를 선정하고 작품을 소개하는 『바이 디자인(BY DESIGN): 세계 최고의 동시대 디자이너』시리즈를 출판하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 부문에서 한국인이 선정된 것은 양 디자이너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파이돈 프레스의 『바이 디자인: 세계 최고의 동시대 디자이너』.

파이돈 프레스의 『바이 디자인: 세계 최고의 동시대 디자이너』.

올해 초 양 디자이너는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라역사관 로비를 리뉴얼한 작업으로 화제를 모았다(중앙SUNDAY 3월 6일자 참조). 한옥과 신라 굽다리 토기에서 영감을 얻은 품격 있는 구조물과 감각적인 장식들이 현 시대 박물관의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로비 중앙에 설치된 신라 토기 노출 전시대는 “유리를 뚫고 나온 유물”이라는 찬사와 함께 유물과 오롯이 대면할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했다.

조선 후기 ‘무미’를 출발점 삼다

우아하고 담백한 멋이 특징인 ‘이스턴 에디션’의 의자.

우아하고 담백한 멋이 특징인 ‘이스턴 에디션’의 의자.

양 디자이너에게는 늘 ‘한국의 미감을 동시대의 언어로 표현했다’는 상찬이 붙는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와 ‘피카부 백’을 협업하며 조선 여성을 주제로 한 옻칠 작업을 선보였다.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과 함께한 ‘많지 않은 것 중 하나(one of not many)’ 전시에선 변치 않는 시간의 가치를 석탑과 석등으로 구현했다. ‘이사 갈 때 뜯어가는 예술 벽지’로 유명한 영국의 드고이네와는 조선 민화 ‘궁궐도’와 ‘책가도’를 현대적 느낌으로 새로 그려 구현했다. 올봄 론칭한 가구 브랜드 ‘이스턴 에디션’ 역시 조선 선비의 서재를 연상시킨다. 나무·돌·금속 등을 간결하게 조합한 뼈대 위에 방석 2개를 겹쳐 스툴을 만들고, 규방 공예 중 하나인 누빔을 소파 쿠션으로 얹어냈다.

그가 작업한 공간·가구들에서 ‘담백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건 디자인의 뿌리가 조선 후기 ‘무기교의 미학, 무미(無美)’에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의 사무실에서 일했던 그는 2008년 귀국, 2011년 ‘태오양 스튜디오’를 차렸다. 서울 북촌에 있는 100년 된 한옥 청송재에 사무실을 꾸민 후 지금까지 줄곧 ‘한국의 아름다움’을 연구했다.

우아하고 담백한 멋이 특징인 ‘이스턴 에디션’의 테이블.

우아하고 담백한 멋이 특징인 ‘이스턴 에디션’의 테이블.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에는 큰 차이가 있죠. 우리에겐 익숙하고, 글로벌에선 차별점이 뚜렷한 ‘한국의 미학’을 화두로 역사·예술·철학·공예 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가는 ‘무미’를 찾아냈죠. 허세와 겉치레를 다 걷어내고 미의 진정성과 본질만 추구한다면 현대인에 어울리는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과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겠다 싶었죠.”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부연 설명하는 표현은 ‘비욘드 테이스트(beyond taste)’다. 취향을 넘어 궁극의 미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산서원’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감탄하죠. 흰 한지로 모든 것을 감싼 텅 빈 방, 밖에서 주워온 자연 그대로의 나무 서안(책상) 등등. 한국의 오래된 주거공간이지만 자신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미학의 본질이 담겨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양 디자이너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한국의 미학=전통문화’라는 도식적인 사고방식에 답답해한다.

“우리가 옛부터 갖고 있던 좋은 것들을 21세기 플랫폼에 맞게, 현대인의 일상에 유용하도록 옮겨오는 게 제 디자인 작업의 핵심이죠. 한국의 미학을 올드하다고 생각하는 게 안타까워요.”

파이돈 프레스가 주목한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90명의 심사위원 중 4명이 태오양 스튜디오를 추천했다. 이후 2년 6개월간 ‘월페이퍼’ ‘모노클’ 등 글로벌 디자인 잡지들을 통해 그의 작업을 지켜봤고 ‘코리안 라이프 스타일’을 전 세계에 꾸준히 어필해온 실력과 감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게 파이돈 프레스 측의 설명이다.

부동산 공부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에 오픈한 ‘엘리먼트 스토어’ 공간.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에 오픈한 ‘엘리먼트 스토어’ 공간.

그는 요즘 MZ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들을 작업 중이다. 한글박물관 리뉴얼과 GS에너지 오피스 공간 컨설팅중이다. 지난 20일 오픈한 롯데백화점 동탄점의 ‘엘리먼트 스토어’의 경우 브랜딩부터 설계까지 모두 담당했다. 럭셔리 명품 숍이 즐비한 1층 중앙에 예외적으로 들어선 이곳은 공간·예술·친환경 컨셉트를 커피와 함께 즐기는 갤러리 카페다. 88평(290㎡) 규모에 62석을 원형으로 배치하고 중앙에는 공예품을 전시했다.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동탄의 대표 산물인  열무를 이용한 디저트도 개발했다.

필요한 자료와 전문 서적을 읽느라 하루 3~4시간 자며 시간을 아꼈다는 그는 요즘 이동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한단다. 멀미를 안 하는 지하철에선 독서를, 택시·버스에선 유튜브 동영상 강의를 듣는다.

“다양한 주제의 영상을 보는데, 요즘 집중하는 것은 부동산이에요.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정권·주택정책이 바뀌어도 공실이 되지 않을 주거 형태의 정보를 얻는 거죠. 디자인에는 솔루션(solution·해법)이 있어야 해요. 아름다움에만 치중하고 정작 실 거주자가 원하는 해법을 제공하지 못하면 비싸고 처치 곤란한 쓰레기 공간으로 버려지겠죠. 고객에게 설명할 때도 이런 데이터·키워드 정보를 함께 제공하면 재밌어 하세요. 디자이너가 웬 부동산 강의냐고.”(웃음)

지난 1년간 잡지 ‘리빙센스’, 사단법인 예올과 함께 전통공예 장인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다. 나무·돌·금속·흙·유리 등 다양한 물성의 가치와 활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알면 알수록 전통공예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더군요.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 습관, 지구가 숨 쉴 수 있는 친환경 문제, 오래 두고 쓸 만한 좋은 물건의 가치 등등. 저도 실제로 가까이 두고 쓰면서 여러모로 힐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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