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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세종시와 혁신도시 이주지원비 '먹튀'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실거주 여부 무관, 신청만 하면 매월 20만원씩 또박또박 받았다

기관마다 매년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씩 지원비 받아
시민단체 “불법 아니라고 문제 없는 건 아냐” 한목소리로 개선 요구

정부세종청사 옥상에서 공무원들이 아파트 건축 현장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이전 기관 공무원 중 상당수가 특공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실거주하지 않고 이주지원비를 받아 간 사실이 드러났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세종청사 옥상에서 공무원들이 아파트 건축 현장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이전 기관 공무원 중 상당수가 특공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실거주하지 않고 이주지원비를 받아 간 사실이 드러났다. / 사진:연합뉴스

장면 하나. 지난 6월 초,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인 A씨를 만났다. 50대 중년인 그가 사는 곳은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아파트. 그가 소속된 부처는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정책에 따라 세종시로 옮겨 간 상태였다. 왜 이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가족도 종로구에 계속 살고 싶어 하고,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살았던 지역이라 쉽사리 정리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A씨는 은퇴 후 서울에서 살 계획이라, 앞으로도 서울-세종을 출퇴근할 생각이다. 그는 세종시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특공)을 신청한 상태였다.

또 다른 장면. 과천정부청사로 출퇴근하던 B씨의 근무지가 2019년 세종으로 옮겨졌다. B씨는 과천에서 근무할 때부터 아파트 특공 청약을 지속적으로 신청했고, 결국 2020년 당첨됐다. 그러나 통근 버스와 KTX 할인, 이주지원비 20만원을 받는 상황에서 굳이 수도권 집을 처분하면서까지 세종 시민이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B씨는 세종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는 대신 세종 인근 도시에 전셋집을 마련했다. 출퇴근은 힘들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그게 더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5월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의 ‘유령청사’ 논란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인 사건이 있었다.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닌데도 세금 171억원을 들여 세종에 신청사를 지었다는 의혹이 핵심이었다. 혈세로 지어진 신청사가 방치되고 있는 사이 소속 직원 82명은 특공을 신청했고, 그중 49명이 분양받았다. 49명 중 19명은 지난해 3월부터 차례로 입주가 가능했다. 그러나 실제 입주한 사람은 9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0명 중 9명은 전세를 내줬고, 나머지 1명은 아파트를 전매(轉賣)했다. 세종 이전 기관 공무원들에게 우선권을 줘 주거 안정성을 높이고자 도입된 특공 제도를 공무원들이 악용했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특테크(특공재테크)’로 시세차익…그들만의 돈잔치

세종시에 위치한 관세평가분류원 신사옥. 관평원의 ‘유령청사’ 논란으로 공무원 특공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종시에 위치한 관세평가분류원 신사옥. 관평원의 ‘유령청사’ 논란으로 공무원 특공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관평원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2019년 12월 31일부터 특공 대상은 243개 기관, 1만1263명으로 나타났다. 세종·혁신도시 등으로 이전한 공공기관·공기업 직원 중 많은 수가 특공을 받았고, 이 중 적지 않은 수가 아파트를 되팔거나 임대하는 방식의 ‘특테크(특공+재테크)’로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조사 결과가 쏟아졌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그들만의 돈잔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강원도 원주혁신도시로 이전한 대한적십자사 직원 중 특공을 받은 사람 4명 중 1명이 분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인에게 임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종 아파트 특공 확인서를 발급받은 한국전력공사 직원 3명 중 1명이 타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퇴직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울산으로 이전한 한국동서발전 전체 직원 중 90명이 특공을 받았는데, 분양받은 곳에 사는 직원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세종으로 옮긴 국민권익위원회가 특공 확인서를 발급해준 직원 4명 중 1명은 해당 지역에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너지공단·주택관리공단·전기안전공사·광물자원공사 등에서 특공을 받은 265명 중 173명(65.3%)이 아파트에 실거주하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공무원에게 주어진 혜택이 비단 특공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이주지원비 문제는 그동안 부각되지 않아서 그렇지 국민 혈세의 또 다른 누수 문제로 꼽힌다. 세종시나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기관은 정착 지원 명목으로 직원 1명 당 매달 20만원씩 최대 2년간 이주지원비를 지급할 수 있다. 특공을 받은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최대 480만원까지 수령할 수 있다. 월간중앙이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주지원비로 나간 세금만 기관당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른다.

2019년 3월부터 2021년 2월까지 2년간 한국에너지공단이 지급한 이주지원비는 16억원가량. 주택관리공단은 2016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3억원, 전기안전공사는 2014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13억원가량을 이주지원비로 썼다. 국토교통부는 2013년 31억원, 2014년 29억원가량을 지급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역시 2013년 14억원, 2014년 12억원을 지원했다. 권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재직자 540명 중 321명(59.4%)이 특공 혜택을 받았다. 거론된 5개 기관에서 나간 이주지원비만 총 118억원이다.

공공기관·공기업뿐만이 아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이 권 의원실 측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세종으로 이전한 정부출연연구기관 16곳 중 15개 기관이 직원에게 지급한 이주지원비는 총 115억2800만원 상당. 이사비로 20억42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도 일부 이전 기관은 특공 아파트 실거주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직원에게 이주지원비와 이사비는 지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주지원비는 이전 기관 직원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이사비는 실제 이사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문제는 특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 이전 기관은 실거주 여부 등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조사 초기 해당 기관에 전화해서 ‘소속 직원 중 몇 명이 특공에 당첨됐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왜 모르느냐’고 되물었더니 ‘우리는 특공 확인서만 발급하지 몇 명이 특공을 받았는지는 사적인 영역이라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이주지원비도 누가 얼마나 받아 갔는지 기관에서 파악조차 못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기관마다 실거주 여부 파악 않고 이주지원비 지급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7월 5일 ‘세종시 특별공급 특혜규모 분석’을 발표하며 특공 폐지를 요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7월 5일 ‘세종시 특별공급 특혜규모 분석’을 발표하며 특공 폐지를 요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권과 학계·시민단체는 한목소리로 특공과 이주지원비의 맹점을 비판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4월 국회에서는 이주지원비 문제가 노형욱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크게 부각된 바 있다. 노 후보자는 특공을 받고도 거주하지 않고 전세를 내줬다가 2017년 2억원 이상 시세 차익을 남기고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사이 매달 20만원씩 이주지원비를 받아 갔다.

노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이주지원비는 근거지 이동에 따른 정착 초기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이전기관 종사자 전원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청문회 당일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지금과 같은 부동산 상황과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불편하게 느낄 것으로 생각한다”며 “경위와 상관없이 송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국토교통부는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관평원 유령 청사 논란 이후에도 특공을 받은 공무원의 실거주 여부와 이주지원비 등의 혜택을 받은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나서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입법 조사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복합도시정책과는 태 의원 측에 “특공을 받은 공무원의 실거주 여부, 이주지원비 수령 여부 등에 대해 내역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회신했다. 태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회신을 공개한 뒤 “국토교통부 장관부터 실거주하지 않고 이주지원비까지 수령한 당사자이다 보니 이러한 현황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진단했다. 이어서 “내년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이주지원비를 환수하거나 인사 조처 등 책임을 묻는 방안이 가능한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주지원비 문제를 바라보는 학계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 부동산 한국감정평가학회장인 정수연 제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에 너무 많이 개입해 특공과 이주지원비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월간중앙과의 전화 통화에서 “세종이 행정수도로 거론되기 시작할 때부터 학계에서는 우려가 컸다. 공무원들이 세종으로 이사하려 하지 않을 것이 자명해서다. 세종에는 어떤 유인(誘引) 요인도 없기 때문”이라며 “그러니 정부는 특공과 이주지원비 같은 억지스러운 인센티브를 만들었다. 그런 제도나 혜택은 반드시 문제가 뒤따르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특공·이주지원비, 처음부터 억지스러운 인센티브”

이은주 정의당, 추경호 국민의힘,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왼쪽부터)이 5월 25일 국회 의안과에 ‘행복도시 이전기관 종사자 특별공급 제도 악용 부동산 투기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이은주 정의당, 추경호 국민의힘,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왼쪽부터)이 5월 25일 국회 의안과에 ‘행복도시 이전기관 종사자 특별공급 제도 악용 부동산 투기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부동산 관련 학과 교수는 “개인의 선택 영역을 지나치게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시장은 반드시 기획자의 의도와는 달리 엇나가게 돼 있다”며 “주거지를 옮기는 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로 큰 변화이기 때문에 웬만큼 특별한 지원이 아니고서는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지난 5월 특공 과정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특공 폐지를 주장하며 “특공 아파트를 분양받은 공직자들은 특공 제도가 공직자 특혜책에 불과함을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공과 이주지원비는 불법이 아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47조는 “이 전 공공기관의 장은 이주 직원에게 이사비용 및 이주수당의 지급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원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이주지원비와 관련해 이전 기관 측에서는 “지침에 따라 적법하게 지급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 교수는 “불법이 아니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일례로 부부가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한부모 가정으로 꾸민 뒤 임대주택 청약에서 가산점을 받는 등의 각종 혜택을 누리는 사례를 심심찮게 듣는다. 이것도 불법은 아니다”라며 “공무원 조직은 관성이 커서 논란이 돼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건 국회뿐”이라고 설명했다.

권 의원은 월간중앙과 만나 “이주지원비는 이주할 사람에게 줘야지 이주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문제”라며 “제도를 설계할 때 합리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주하거나 안 하거나 이주지원비를 준다는 건 제도에 허점이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논란을 불러온 세종시 공무원 특공 제도는 7월 5일부로 폐지됐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령’을 공포하고 관보에 게시했다. 그러나 세종시만 폐지됐을 뿐 혁신도시 공무원 특공제도는 아직 살아 있다. 경실련은 전국의 혁신도시 특공도 없애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국회는 세종에서 특공을 받은 공무원에게 5년 이내 범위에서 실거주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했을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주택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개정 주택법은 소급적용이 안 돼 지난 사례를 적발하더라도 불이익을 주거나 부당이득을 환수할 방도가 없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특공을 받은 공무원 수가 세종에는 2만6000명, 혁신도시에는 2만 명 정도”라며 “세종이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긴 하지만, 혁신도시도 만만찮다. 아직 특공 문제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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