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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유상철의 직격인터뷰

“이제 중국과 무조건 잘 지내자는 생각은 버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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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극중지계』 펴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오늘(8월 24일)로 한중 수교 29주년을 맞는다. 분위기는 밝지 않다. 가라앉은 느낌이다. 한국인의 77%가 중국이 싫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중국을 극복하자는 책 『극중지계(克中之計)』가 나온 게 한·중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책은 2006년 니어(NEAR)재단을 설립해 지난 15년간 중국 연구에 몰두해온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이 10여 명의 학자와 함께 펴냈다. 2년여가 걸렸다. 중국 연구는 사소한 자료마저 기밀로 취급하는 중국의 통제 탓에 쉽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웠던 건 중국이나 미국의 시각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중국 문제를 분석할 국내 학자를 찾는 일이었다고 한다. 지난 1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정 이사장을 만나 미·중 충돌 시대 한국의 생존 방정식에 관해 물었다.

한·중 관계가 정체 내지 퇴보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오랜 기간 미국에 파이프를 연결해 생명수를 공급받았다. 지금은 중국에 연결한 파이프에 많이 의존한다. 가끔 녹물이 나올 때도 있지만, 중국서 오는 물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 한데 근년 들어 분쟁이 생길 때마다 중국이 우리와 연결된 파이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드(THAAD) 보복이 그런 예다. 그러면서 한·중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중국은 한국과 관계 하향 조정 중
한국 외교엔 중국 공포증 자리해
중국의 굴기는 중국적 국익 강요
‘안미경중’ 아닌 ‘안경일체’ 필요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중국 문제는 중국 특유의 이중성 때문에 모호하고 난해하지만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만큼 우리 시각에 의한 국적 있는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중국 문제는 중국 특유의 이중성 때문에 모호하고 난해하지만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만큼 우리 시각에 의한 국적 있는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수교 직후 중국에선 “한국을 배우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은 한국을 ‘관리대상 종목’ 정도로 본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에 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을 가장 근거리에서 가장 파급력 있게 전파할 수 있는 나라다. 중국 공산당 통치에 위협이라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이 왜 한류를 틀어막나. 단순히 사드 보복 차원만은 아니다. 체제 유지와도 연결된다.”
중국의 굴기가 위협인가.
“중국의 굴기는 미국적 질서와 가치를 위협하기에 미국에 위험이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위협 이유는 다르다. 미국적 질서에 편입된 우리의 기본 질서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중국적 질서와 가치, 그리고 중국적 국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랑(戰狼)외교 탓인지 한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오만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의 외교전술은 무자비하다. 사드 보복 때 중국은 원숭이를 겁주기 위해 닭을 죽인다는 말처럼 한국을 본보기로 삼았다. 한국은 이런 중국의 전술을 예견하지 못했다. 사드 찬반으로 국론이 분열된 채 짓밟히고 말았다. 지금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하향 조정 중이다. 우리 특사를 대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행태를 보라. 중국은 한국이 미국에 기울지 못하게 묶어는 놓되 큰 관심은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과 경쟁 중인 중국으로선 한국의 환심을 사려 노력해야 하지 않나.
“중국은 미국과 경쟁을 벌이면서 관련 국가를 세 부류로 나눴다. 첫 번째는 일본과 같은 미국의 확실한 우방국이다. 중국은 이들을 냉담하게 대하되 실리 챙기기에 몰두한다. 두 번째는 필리핀 같은 친중 국가다. 경제적 혜택을 주며 자국 편으로 묶어둔다. 마지막은 한국처럼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국가다. 이들 나라엔 당근 대신 채찍을 휘두른다. 중국은 특히 한국을 미 동맹의 약한 고리라 보고 본보기 차원에서 더 거칠게 다룬다.”
중국이 국력이 커짐에 따라 한국과의 관계를 하향 조정 중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앙포토]

중국이 국력이 커짐에 따라 한국과의 관계를 하향 조정 중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앙포토]

우리의 대중 외교가 저자세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 국격이 훼손되는 온갖 외교적 굴욕을 당해도 대중 소통채널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하소연도 못 한다. 이런 부당한 대우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중국에 대한 강박관념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정책결정 결과에 대해 중국의 반응을 선제적으로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사고가 고착되며 중국 공포증과 같은 심리적 불안감이 의식 속에 자리 잡았다.”
우리 외교가 중국을 무서워하는 공중증(恐中症)에 빠졌나.
“그렇다. 중국에 대한 잘못된 환상이 대중 외교의 프레임으로 작동하며 우리 외교가 쪼그라들었다. 현재 우리의 대중 외교는 신기루 같은 세 개의 환상에 갇혀 있다. ‘한반도 통일에서 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북한 비핵화에서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발전을 위해 중국 시장을 절대 상실해선 안 된다’ 등이 그것이다.”
극중8계

극중8계

한반도 통일과 비핵화에서 중국의 역할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한반도 통일 문제에서 중국이 우리와 북한에 전하는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국은 우리에게 늘 피상적 의미에서 자주 평화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외세의 간여 없이 한민족 합의로 이뤄지는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엔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구상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최근엔 이를 ‘북한의 주장과 북한이 견지하는 입장을 지지한다’고 포장한다. 이는 중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또 비핵화 관련 중국의 역할은 늘 수동적이었다. 미국의 압박이 없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중국을 무슨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신주 받들듯이 해야 하나.”
중국의 시장을 놓쳐서는 안 되지 않나.
“물론 중국 시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중국의 높은 비관세 장벽으로 인해 겪는 차별과 고충은 수교 30년이 가깝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좁혀지고 사드 보복이 더해지면서 우리 기업의 입지는 더 어려워졌다.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대중 프레임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프레임에서 벗어날 경우 겪게 될 단기적 위험과 외교적 마찰을 너무 크게 생각한다.”
미·중 사이 한국의 선택에 따른 선택 비용

미·중 사이 한국의 선택에 따른 선택 비용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안미경중(安美經中)을 금과옥조처럼 외운다. 이게 앞으로도 우리의 호신부가 되나.
“더는 유효하지 않다. 안미경중을 우리 정부가 반복해 말하는 바람에 미·중 모두로부터 한국에 이용만 당한다는 오해를 사고 있다. 솔직히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한국의 독자적 통상정책 여지가 있는가? 어떤 피해도 없이 우리 이익만 극대화한다는 접근법은 현실성이 없다. 불편한 현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계속해서 연기할 뿐이다. 단기적으로 우리 몸값이 오를 수 있겠지만, 어느 순간 왕따가 될 수도 있다. 장기적 측면에서 안미경중 방식을 바꿔야 한다. 안보와 경제를 하나로 합쳐 살펴보는 안경일체(安經一切) 전략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의 대중 전략은.
“우리 앞엔 중국과의 충돌, 예속, 공존이란 세 갈래 길이 있다. 한·중 레드라인을 설정해 충돌과 예속은 피하되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스스로 강해지는 자강의 길을 가야 한다. 중국에 꼭 필요한 나라가 돼야 존중받으며 공존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방어전략은 북한으로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중국도 포함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중국이 우리의 영토주권은 물론 의사주권 개입에 주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과 무조건 잘 지내자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한·중 양국이 서로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

한·중 양국이 서로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

자강의 길은 어떻게 가야 하나.
“4개의 힘이 필요하다. 경제력에선 반도체처럼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군사력에선 전면전은 몰라도 국지전에선 중국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외교력은 이이제이(以夷制夷)가 필요하다. 한미동맹, 일본, 러시아 모두 활용해야 한다. 문화력에선 우리가 문화적·윤리적 우월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정 이사장이 지난 2년간 학자 10여 명과 함께 ‘극중지계’를 놓고 씨름하며 얻게 된 건 무얼까. 그는 “중국에 대한 눈이 조금은 밝아졌지만, 아직도 중국을 깊고 체계 있게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소득이라면 “적어도 중국에 대해 무엇을 모르는지는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누구는 동산(東山), 또 누구는 서산(西山)이라 부르는 거대한 산 중국을 한마디로 어떻다고 단정하는 건 무리”라는 이야기다. 특히 중국은 생물처럼 계속 변한다. 그래서 “중국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생각해왔던 나라가 더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중국 국민도 덩샤오핑(鄧小平)이나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극중지계』 출간을 계기로 시진핑 시대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앞으로 한·중 간 무엇이 쟁점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촉발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성역이 있어서도 안 되고 중국식으로 은밀하게 덮고 넘어갈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다. 왜?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운명에 치명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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