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보다 가게·길·식당처럼 지금의 서울에 주목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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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철거 전 서울 아현고가도로에 선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사진 김시덕 교수]

철거 전 서울 아현고가도로에 선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사진 김시덕 교수]

“궁궐이 5개 있었다? 저는 관심 없어요. 그보다는 우리가 걷고 있는 길, 낮에 들른 가게나 식당처럼 지금의 서울에 주목해보자는 것이죠.”

대서울의 길

대서울의 길

최근 『대서울의 길』(사진)을 낸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대서울의 길』은 『서울 선언』 『갈등도시』에 이어 낸 ‘서울 선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서울 선언’ 시리즈는 대한민국의 『동국여지승람』 같은 책이다. ‘대중교통과 걷기’를 통해 서울 곳곳을 관찰하고 변천사와 주민들의 구술을 넣었다. 얼핏 지나가기 쉬운 간판 하나, 표지명 하나, 버스 시간표도 그 유래를 찾아 의미를 부여한다.

『서울 선언』은 서울에 자리한 궁과 기와집 대신 주택과 아파트, 길, 식당 등에 주목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답사기로 주목받았고,『갈등 도시』는 의왕, 군포, 과천, 시흥, 성남 등 서울의 외곽으로 밀려난 특수시설과 그에 얽힌 서사를 다뤘다. 이번 책은 강화, 파주, 평택, 춘천, 철원까지 확장했다. 왜 ‘서울 선언’에 포함되었을까.

서울 경계선이 너무 확장된 것 아닌가.
“서울 통근·통학권 지역을 포함했다. ‘수도권’은 면(面)을 중심으로 한 개념인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서울 생활권인 수지와 농업지대가 많은 처인은 같은 용인이지만 다르다. 서울에서 선(線)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따라가야 서울과 그 주변이 명확히 보인다. 그래서 나는 수도권보다는 ‘대서울’이라는 개념을 썼다. 아침에 동서울, 강남, 양재, 사당 등에서 버스 정류장에 길게 줄을 선 직장인들에게서 대서울의 구조가 보인다. (책의 부제도 ‘확장하는 도시 현재사’다.)”  
답사기라면서 이름난 유적은 안 다뤘다.
“지금 국민 대다수는 평민 출신이다. 조선이 아니라 개항 이후가 삶에 직결된 역사다. 사실 서울 4대문 외엔 조선 시대 흔적이 많지 않다. 현대 한국의 모습을 만든 것은 식민지 때부터 개발독재시대를 거친 현재까지의 100년이다. 개발하고 원주민을 이주시키고 높은 아파트를 짓고 그러면서 땅의 성격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성남 ‘광주대단지 사건’(1971)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반도 그런 측면에서 봐야 이해가 된다. 인문학을 내걸고 자꾸 조선 복원을 강조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경기 파주 장파리에 있는 옛 미군클럽. 무명시절 ‘가왕’ 조용필도 공연했다고 한다. [사진 김시덕 교수]

경기 파주 장파리에 있는 옛 미군클럽. 무명시절 ‘가왕’ 조용필도 공연했다고 한다. [사진 김시덕 교수]

그래도 너무 주변부에 대한 얘기 아닌가.
“서울에 교도소 같은 특수시설이 없는 것은 안양 등 주변 도시로 보내서다. 서울 시민의 예비군 훈련소도 서울 밖에 있다. 누군가 서울의 짐을 떠안은 거다. 그런데 서울 시민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른다. 이런 곳을 답사하고 나면 예전과는 서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인문학자로서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 궁이나 양반 가옥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다. 20세기 초 백정 신분해방 운동인 형평사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진주 시민들의 돈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는데 얼마 전 임진왜란 승전탑을 세운다고 그것을 성 밖으로 밀어냈다. 나도 임진왜란 관련 연구로 책을 썼지만, 이것은 퇴행적 현상이다. 우리를 만든 100년을 지우고 위대한 조선과 21세기 대한민국만 기억하려고 한다.”
이번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곳은.
“평택이다. 미군 캠프 험프리스 이전사업으로 대추리 등 4개 마을이 강제 이주됐다. 독립기념관과 울산항을 만들 때도 강제이주가 있었다. 대한민국 곳곳에 이런 사연이 있다. 울산항의 용연마을 망향비를 보면 ‘아쉽지만 국가를 위해 정든 고향 땅을 내준다. 이 땅이 어떤 용도로 쓰이든 축복 속에 번창하길 기원한다’고 적혀있다. 사실 캠프 험프리스 문제도 대추리 외 3개 마을은 협상이 잘 됐고 용연마을과 같은 망향비도 있다. 그런데 이런 지역은 묻히고 대추리처럼 NL 계열 운동권들의 입맛에 맞는 지역만 반미의 상징으로 대표성을 얻고 있다. 이 또한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서사다.”
대서울이 어디까지 확장될까.
“적어도 천안·청주까지는 확장될 것으로 본다. 중요한 축의 하나가 삼성반도체다. 출퇴근 인구의 이동선이 대서울의 범위가 된다.”

김 교수는 최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을 상대로 교육부에 재임용 탈락에 대한 교원소청심사를 신청했다. 그는 2017년 재임용심사에서도 탈락했다가 문제 제기로 재심사 후 재임용됐다. 4년 만에 같은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김 교수는 “논문 심사에서 평가가 ‘수’~‘가’로 극단적으로 엇갈리면서 평점이 낮아졌다.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소위 애국적 국학자도 아니고, 국제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학자인데다 ‘비서울대’ 출신이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주장에 서울대 규장각 측은 “진행 중인 사안이라 따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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