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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하는 비결? 무소반읽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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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국내 대학에서 맨 먼저 영어로 강의한 한국인 교수다. 우상조 기자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국내 대학에서 맨 먼저 영어로 강의한 한국인 교수다. 우상조 기자

토종 한국인 교수인데 영어로 강의하고, 학술서적도 펴냈다. 구대열(76)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영어 공부법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고 해외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 그는 영어로 일가를 이뤘다. 최근 구 교수는 영국 출판사에서 『한국 1905~1945: 일제부터 광복과 독립까지』(사진)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영국 명문 런던정경대(LSE)의 첫 한국인 박사학위 취득자다. 그를 18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한국 1905~1945: 일제부터 광복과 독립까지

한국 1905~1945: 일제부터 광복과 독립까지

영어 얘기부터 꺼냈다. 구 교수는 “아직도 R과 L 발음을 잘 못 한다”며 허허 웃었다. 이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독일어 억양이 강하다. 그래도 할 말 다하고 농담도 한다”고 말했다. 영어 공부에 왕도가 있을까. 그는 “무조건 소리 내 반복해서 읽고 외웠다”며 이른바 ‘무소반읽외’ 학습법을 소개했다. 책 2권을 정해 완독 때마다 ‘바를 정’(正)을 썼다. 그렇게 쓴 게 200개가 넘기도 했다.

LSE 박사 학위 시절 지도교수한테 받은 충격도 한몫했다. 구 교수는 “논문을 써냈는데, ‘이 영어로 박사 학위는 안 되고 그 아래는 가능하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 달만 더 달라”고 한 뒤 논문을 싹 고쳤다. 결국 통과했다. 그는 국내 대학에서 맨 먼저 영어로 강의한 한국인 교수다. 그런 그는 “지금도 영어로 말할 일이 있으면 떨린다. 그래도 중요한 건 알찬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책은 자신이 과거에 낸 『한국 국제관계사 연구』를 기초로 했다. 영·미 정부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일본강점기 한반도 관련 외교문서가 주재료다.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외교 전략을 연구했다. 영문판은 특히 서문에 공을 들였다. 구 교수는 “지난 100년간 나온 학술서적 서문 중 100편을 뽑을 때 들어갈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료를 보면 중국·영국 외교관들이 ‘조선은 달래다가 때리는 시늉하면 말을 듣는 어린아이 같다’고 하는 내용이 많다”고 소개했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객관성이다. 한일합방부터 광복까지 다루면서도 반일로 흐르지 않았다. 구 교수는 “소녀상, 죽창가 등으로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건 쉽지만, 일본의 진실을 보는 건 어렵다”며 “한일관계를 되도록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제를 세계사적인 관점과 국제학적 시점으로 정확히 보고 접근해야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확히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려 외교사도 들여다보고 싶은데, 아내가 ‘건강 생각하라’며 말린다”고 전했다. 부인 박원숙 여사는 와인 관련 책을 5권 펴낸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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