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국회 9부 능선 넘었다…의협 "헌법소원 불사"

중앙일보

입력 2021.08.23 16:43

업데이트 2021.08.23 18:35

수년째 지지부진한 논의를 이어온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23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 2014년 수술실 생일 파티 논란 등으로 2015년 관련 법안이 처음 국회에 제출된 뒤 6년 만에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가 “감시를 통한 통제는 의료를 멍들게 한다”며 헌법소원 등 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해 법안 저지에 나서겠다고 반발하고 있어 향후 갈등이 예상된다.

'수술실 CCTV 설치법' 복지위 통과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한 의료법 일부개정안들을 가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수술실 CCTV 설치법' 복지위 통과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한 의료법 일부개정안들을 가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3일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고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법률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심의ㆍ의결 후 통과시켰다. 복지위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안규백, 신현영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3개 법안을 지난해 11월 이후 이날까지 5차례 걸쳐 심사했고 의료계·환자단체와 공청회도 열었으며 이날 일부 조항을 수정한 대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전신마취 등으로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할 경우 수술실 내부에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되지 않은 CCTV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걸 골자로 한다. 의료인의 불법행위를 막고 환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환자나 보호자 요청이 있으면 수술 과정을 촬영해야 한다. 촬영 때 녹음 기능은 사용할 수 없지만, 환자나 의료진 모두의 동의가 있으면 녹음도 가능하다. 응급·고위험 수술과 전공의 수련 목적 달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을 때만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열람은 수사나 재판 관련 공공기관 요청이나 환자와 의료인 쌍방 동의가 있을 때 가능하도록 했고 비용은 열람을 요구한 이가 부담하게 했다. 설치 비용은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의료기관장은 CCTV로 촬영한 영상 정보가 분실, 도난 등 되지 않도록 계획을 수리해야 하며 촬영 영상 정보를 3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시행까지는 법안 공포 후 2년의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의협은 이날 즉각 “CCTV 만능주의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 강하게 반발했다.

2018년 전국 병원 중 최초로 CCTV 설치 시범운영을 시작한 경기도의료원안성병원 관제실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수술실 CCTV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전국 병원 중 최초로 CCTV 설치 시범운영을 시작한 경기도의료원안성병원 관제실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수술실 CCTV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의협은 “이 법안은 전문가 집단의 자율적인 발전과 개선 의지를 부정하고, 정치권력이 직접 사회 각 전문영역을 정화·통제해야 한다는 왜곡된 인식의 결과”라며 “탁상공론으로 조잡하게 마련된 방안으로 의사들을 옥죄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높은 위험을 감당하며 환자 생명을 구하고자 사투 벌이는 의사들을 감시하에 두고,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를 판단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라며 “의료 환경에서 환자의 생사를 다투는 위태로운 상황을 가급적 기피하고자 하는 경향을 확산시킬 게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본회의에서의 부결 촉구와 개정안 통과 시 헌법소원 제기 등으로 강력히 법안 실행을 저지하겠다고 경고했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부분이라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안을 정치적 이유로 밀어붙인 측면이 있다”라며 “헌법소원을 진행해가면서 피해받는 병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예 기간에 하위 법령이 보완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도 "(이 법은)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든 의료인과 병원계 종사자의 노고와 희생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라며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극소수 의료인의 일탈행위에 대한 다양한 제재방안이 있는데도 여러 가지 쟁점이 있는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을 처리한 데 다시 한번 유감을 표한다"며 "내부 설치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을 국회와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병협은 덧붙였다

반면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 2014년부터 유령수술, 무자격자 대리수술, 성범죄, 의료사고 은폐 등을 예방하기 위해 시작된 수술실 CCTV 관련 의료법 개정운동이 7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며“신속하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수술실 CCTV 설치법 처리는 2014년 수술실 생일파티 논란 이후 이듬해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지 6년 만의 일이다. 19~20대 국회에서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제대로 심의도 되지 않고 폐기 수순을 거쳤지만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이 설치법 통과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6년간 끌어온 논의가 9부 능선을 넘었다.

의료계는 그간 수술실 내 대리수술이나 성범죄 등은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면서도 CCTV 설치가 해결책은 아니라고 반발해왔다. 감시 상황이 만들어지면 오히려 의료 행위가 소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고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 등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수술실 입구 CCTV 설치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환자단체는 상당수 의료기관이 수술실 입구에 CCTV를 설치했는데도 범죄 행위를 막지 못한다며 수술실 내 설치를 요구해왔다. 지난 6월 말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는 참여자 1만3959명 중에서 97.9%인 1만3667명이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 의견을 낸 바 있다.

법사위 심사까지 5일의 숙려기간이 필요한 만큼 25일로 예정된 8월 국회 본회의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물리적 시간은 부족하지만, 야당 의지만 있다면 여야가 합의해 법사위에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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