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이념보다 진했다”/이하경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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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념과 체제는 달라도 혈육의 정은 변함이 없는 법이다.』
북경아시안게임 체조경기에 국제심판으로 참가,남한의 세 동생과 극적인 전화상봉을 했던 이병문씨(60)가 27일 오후 평양으로 떠나기 직전 남긴 한마디는 피는 이념보다 몇백배 진하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악착같이 살아서 통일이 되는 그날 반드시 동생들을 만나고 어머니 산소를 찾아 용서를 빌겠습니다.』
북경발 평양행 열차에 오르는 이씨의 얼굴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40년간을 하루처럼 애타게 그리던 동생과의 전화상봉,그 잊지 못할 감격도 이제는 과거 속의 순간이 되고 말았다.
그리운 어머니. 맏아들이 소식이 끊어져 사망신고까지 내놓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실 때 손가락 두개를 펴보이며 『2년만 더 살면 병문이를 만나볼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히셨다는 어머니.
이씨는 북경에 머무르는 동안 줄곧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고전화상봉의 순간을 함께했던 기자에게 『죽을 때까지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작별의 악수를 청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망설임 끝에 트렁크에서 작은 종이백 한개를 꺼냈다.
『이제 돌아가면 언제 목소리라도 들을지 모르겠고…. 그저 잊지 않고 있다는 마음의 표시이니 동생들에게 꼭 전해주시오.』
평양산 「홍초」담배 3갑,워트카(보트카) 1병,고려인삼은단 1갑과 빨간색 세배주머니 1개가 내용물의 전부였다.
『이곳에서 40년 만에 만난 남조선시절의 제자 상국이(김상국 대한체조협회 부회장)와 수많은 남조선 체조인들이 못난 형 대신 동생 가족들을 만나 안부를 전해준다고 하니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군요.』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씨는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언젠가 기필코 남조선을 찾겠다』며 열차에 올랐다.
이병문씨. 그는 이렇게 해서 우리의 곁에서 사라져 가깝고도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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