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기업 흠집만 내려 하지 말고 격려해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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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광고 때문에 사설과 기사가 다르게 나온다"고 황당한 말을 하더니, 이번에는 대학 특강에서 특정 대기업을 예로 들며 지주회사 체제로 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재벌 계열사나 협력사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른바 '경제 검찰'의 수장이 은연중에 '대기업이 부도덕하고,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학생들에게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원장은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기업들이 담합을 하거나 불공정거래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는 자리다. 경쟁을 촉진해 가격을 떨어뜨리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엄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업의 지배구조를 거론하며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누구보다 권 위원장이 이런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소신이라며 이런 말을 했다면 스스로 정부의 각료인지, 상아탑의 교수인지 분별을 못한 행동이다. 권 위원장 스스로도 취임 초기에 "과거 공정위는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을 강조했지만, 나는 독과점 해소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정부에 들어가 몇 달만 있으면 하나같이 무슨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말을 바꾸니 딱한 노릇이다.

기업 지배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정답이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해당 기업과 주주 등 이해 당사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정부가 일일이 간섭할 성질이 아니다. 공정위원장이 출자총액제한제도보다 더 강력하다는 순환출자 금지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기업 지배구조까지 언급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게다가 기업이 세금을 제대로 내고,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면 타박만 할 수는 없는 게 엄연한 현실 아닌가. 지금이라도 공정위원장은 투자를 막는 기업 규제에서 손을 떼고, 경쟁이 꽃피는 시장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