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 총통 비리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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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집권 민진당 대표 투표장에 나란히 참석한 천수이볜 대만 총통(뒤)과 부인 우수전 여사(앞). 우 여사는 3일 국가 기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타이베이 AFP=연합뉴스]

대만 검찰이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의 국가기금 불법 사용 혐의를 포착했다고 3일 밝혔다. 면책 특권이 있어 재임 중 기소는 피하겠지만 현직 총통의 비리 혐의가 사법 당국에 의해 확인되기는 대만 역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또 총통 부인 우수전(吳淑珍) 여사를 같은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친인척 비리가 드러나 사퇴 요구를 받아온 천 총통에 대한 야권의 퇴진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여 임기(2008년 5월) 전에 사퇴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대만 검찰 대변인은 이날 "천 총통의 비밀 외교기금 운용과 관련해 부정 취득 및 문서 위조 혐의로 천 총통을 기소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국가 원수의 면책특권에 따라 현재로서는 총통에 대한 기소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검찰 대변인은 그러나 "퇴임 뒤 기소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덧붙였다.

◆ 부인은 기소=한 달여간 총통부의 외교기금 운용 의혹을 조사해 온 대만 검찰은 이날 우 여사와 천 총통의 전직 보좌관 세 명을 횡령과 문서 위조, 위증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 대변인은 "우 여사 등이 2002년 7월~2006년 3월 사이 외교기금 지출분 가운데 1480만 대만 달러를 영수증 처리 없이 부정 취득했다"고 밝혔다. 그는 "천 총통이 검찰에 두 차례 외교기금 사용에 대해 설명했으나 진술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며 "천 총통이 비밀 외교기금 용처에 대한 자료 여섯 건을 제출했지만 조사 결과 두 건만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반쪽 총통'에 치명타=2004년 재선에 성공한 천 총통은 올 들어 친인척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의 사위가 주식 내부자 거래로 4억 대만 달러(약 118억원)의 이익을 챙겼는데 그 배후에 총통 부부가 관련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전 총통부 부비서실장이 뇌물 비리로 물러나는 등 지금까지 친인척과 측근 등 10여 명이 각종 비리 혐의로 물러나거나 사법처리됐다.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고 파업 사태가 빚어지자 그는 6월 인사권을 포함한 당정의 일상 업무를 쑤전창(蘇貞昌) 행정원장(한국의 국무총리에 해당)에게 넘기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야권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10월에는 입법부에서 탄핵안이 표결에 부쳐졌으나 여당인 민진당의 투표 불참으로 부결됐다.

◆ "국민 신뢰 잃어"=검찰 발표로 천 총통은 이전보다 훨씬 강도 높은 퇴진 압력에 시달릴 전망이다. 야당인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주석은 천 총통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마 주석은 "그는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잃었다"며 "더 이상 국민을 이끌어갈 수도, 국가를 대표할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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