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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식품사, 정부 제출 신고서 한 해 350개… 시간 187일 돈 8500만원 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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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견 식품 제조업체 A사는 매년 두 차례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노동부에 내야 한다. 대행업체에 측정을 맡기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회사 담당직원도 함께 따라다녀야 한다. 측정 전 기본 서류를 준비하는 데도 하루 정도 걸린다. A사는 금융감독위원회에도 한 해 두 번 분기보고서를 만들어 낸다. 5명의 경리직원이 1주일간 자료를 준비한다. 나흘간 공인회계사의 외부 감사를 받을 때도 직원들이 자료를 챙겨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A사가 한 해 동안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자료는 350여 건이다. 이 자료를 만들기 위해 총 4500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A사는 종업원 시간당 평균임금이 1만9000원이기 때문에 행정기관에 보고.신고 등을 하느라 한 해에 약 8500만원이 드는 셈이다.

정부는 앞으로 행정기관에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제출하느라 기업들이 떠안는 부담을 금액으로 산출키로 했다. 이 금액을 줄여나가는 '행정부담 감소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서다.

◆ 표준비용 조사부터 시작=제도를 도입하려면 우선 나라 전체의 행정부담 비용을 산출해야 한다. 기업들이 행정부담에 소모한 시간에다 평균 임금을 곱해 전체 비용을 뽑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행정부담으로 연간 200억 달러가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앞으로 10년간 이를 150억 달러 정도로 줄이는 게 네덜란드의 목표다.

한국 정부도 표준조사에 착수했다. 같은 종류의 일이라도 업체 사정에 따라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다르다. 따라서 재계.연구기관 합동 팀을 구성해 업종별로 2개씩 20여 개 업체를 선정해 비용조사를 하게 된다. 표준 비용이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기업 전체의 비용을 추산하고 감축 목표를 정할 방침이다.

◆ 기존의 규제개혁부터 성공시켜야=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불필요한 부담을 줄이려는 것은 늦게나마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에 추진하던 규제개혁 정책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부처 간에 얽혀 있는 덩어리 규제를 풀기 위해 2년 시한의 규제개혁기획단을 만들었다. 여기서 41개 전략과제, 1300여 개의 세부규제를 푼다는 목표를 정했다. 기획단 활동은 지난 8월 마감했다. 그러나 세부규제 목표 중 61% 정도밖에 풀지 못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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