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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대 주름잡는 마라톤 강국 케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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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극심한 교통 체증과 달리는 마라토너, 케냐의 아침 풍경은 두 가지로 채워진다. 사진은 도로변을 달리는 젊은 마라토너의 모습. 나이로비=권혁재 기자

"키오스크(동네 수퍼) 아저씨도 서브 3(풀코스 기록이 3시간 미만)라니까요."

마라톤 왕국 케냐에서는 이런 농담 같은 진실이 돌아다닌다. 2003년 폴 터갓(36)이 세계 마라톤 사상 최초로 2시간4분대(4분55초)에 진입한 데 이어 수많은 케냐 선수들이 국제 무대를 평정하고 있다. 4월 열린 110년 전통의 보스턴마라톤에서는 케냐 선수가 남녀 종목 모두를 석권했다. 당시 로버트 체루이요트(27.남)는 대회 기록(2시간7분14초)을 세웠고, 리타 옙투(25.여)는 대회 사흘 전에 도착해 적응 훈련 없이 우승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5일 잠실종합운동장~성남 구간에서 열리는 중앙 서울마라톤에도 키루이 폴 키프롭(26)과 윌리엄 키플라가트(34) 등 2시간6분대 기록을 가진 케냐 출신 톱 마라토너가 출전, 우승을 노린다.

이른 아침부터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 때문에 눈조차 뜨기 힘든 도로변에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달리는 수많은 젊은이를 만날 수 있다. 나이로비에서 만난 마라토너 벤 무왕기(20)는 "우리에게 마라톤은 문화다. 케냐 곳곳에 전문적인 마라톤 캠프가 널려 있다"고 말했다.

나이로비 외곽 응공 언덕은 케냐 마라톤의 산실이다. 그곳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케냐 아미 캠프(케냐군 소속)'다. 축구장만 한 공터에 6개의 군용 텐트가 세워져 있다. 남녀가 반씩 사용한다. 인원은 대략 60명. 화장실은 간이로 만들어진 것이 딱 하나다. 적어도 이방인들이 보기에는 최악의 훈련 장소다. 그러나 아미 캠프에는 전.현직 국가대표가 20명이 넘었다. 그중에는 국제 대회에서 입상해 어느 정도 돈을 번 사람도 있었다. "왜 이곳에 남아 있느냐"는 질문에 국가대표 출신 안토니 가타이가(32)는 "가족이 여기 있고, 집도 나이로비에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최고의 훈련 장소다. 다른 나라에 갈 이유가 있나"라고 되물었다.

케냐는 마라토너 수출국이다. 각국의 마라톤팀은 자국 선수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케냐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카타르 등 중동의 부국들은 적극적으로 케냐 선수들을 귀화시키고 있다. 평균 1600m의 고도는 장거리 훈련을 위한 최적의 높이라고 한다. 산소 밀도가 적당히 낮아 장기간 훈련을 지속하면 헤모글로빈과 적혈구 수치가 늘어나면서 산소 운반능력이 크게 향상된다는 것이다. 케냐인들은 바로 그 높이에서 태어나 자라고, 달린다. 케냐 젊은이들에게 마라톤은 일확천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웬만한 마라톤 대회의 우승 상금은 수만 달러에 이른다. (2005년 기준으로 케냐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100달러고, 실업률은 40%를 넘는다.)

나이로비(케냐)=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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