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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여행스케치] 영국 하드리아누스 방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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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스코틀랜드로 향하는 길. 로마제국의 '끝'을 만났다. 마침 이탈리아 반도에서 남프랑스,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옛 로마 영토의 핵심부를 둘러본 참이었다. 감동이 너무 커 나는 전생에 분명 로마인이었을 거란 물증 없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에 도착한 것이다.

로마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시킨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는 지금의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켈트족의 격렬한 저항에 부닥친다. 제국의 영토는 오늘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경계 부분에서 그친다. 이어 등극한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는 북쪽 '야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 경계 부위에 길이 130㎞의 성벽을 쌓았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다.

여기선 하루에 비가 네 번씩 왔다. 촉촉히 젖은 초록빛이 연출해내는 장관. 하지만 남유럽의 그것과는 너무 달라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낮게 깔린 구름과 음습한 대지는 마치 딴 세상만 같았다. 지중해변의 따스한 햇살 아래 와인 한 잔 곁들인 올리브를 먹고 살았을 고대 로마인들이 과연 전의를 상실할 만도 했다. '더 가 봤자 별 거 없구나. 역시 내 고향이 최고야.' 다리가 드러난 옷과 샌들을 신은 로마인이라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지 않았을까.

동쪽의 뉴캐슬에서 서쪽의 칼라일까지 이어지는 성벽을 보기 위해선 자동차 여행이 편하다. 좁은 B6318번 지방도를 따라 성벽이 이어진다. 사서 고생하기 좋아하는 유럽인들 중엔 비옷을 입고 성벽을 따라 7일 정도를 걸어 횡단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영문 정보 사이트 www.hadrianswall.org)

오영욱 일러스트레이터.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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