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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원작에 흡집 남긴 졸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우연인지 의도된 바에 따라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근년 들어 관람한 많지 않은 영화 중에는 사회주의국가에서 고전을 영화화한 게 두 편 있었다. 한편은 소련이 만든 『전쟁과 평화』였고 다른 한편은 중국이 만든 『삼국지』였다.
작년에 본 『전쟁과 평화』의 경우 영화가 준 감동이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만은 인정할 수 있었다. 특히 사실과 거의 일치할 만큼 많은 인원을 투입해 공중촬영으로 한눈에 펼쳐 보이는 여러 전투장면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고 사랑의 감정이나 작가의 세상 읽기에 대한 그들의 영화적인 해석도 신선한 충격을 주는 데가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본 『삼국지』의 경우는 개봉 전 국내 매스컴의 요란스러운 소개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하기야 그 어떤 고전보다 방대한 인물과 사건을 다룬 『삼국지』를 상·하 두 편에 압축해 넣겠다는 기획자체가 이미 무리였을 수도 있다. 또 도입 뒤의 편집과정에서 국내극장의 상영시간에 끼워 맞추기 위해 지나치게 가위질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심했다. 비록 평역이라는 모호한 형대로나마 여러 해 『삼국지』를 다뤄본 적이 있는 내게는 실망스럽다 못해 화까지 날 정도였다.
무릇 고전이란 그것을 고전이라 하는 기본정신이 있다. 아무리 표현장르가 달라졌다 해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게 그 기본정신인데 이 영화는 우선 그 해석부터 수준미달이다.
먼저 지적할 것은 원전에 담긴 역사성의 이해. 이 영화는 부패한 한말의 사회와 그 필연적인 붕괴과정에 대한 이해는커녕 「천하대세는 합치면 나뉘고 나뉘면 합친다」는 나관중 시절의 천명사상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충성과 의리, 종횡무진하는 지략의 영상화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불같은 충성으로, 또는 드높던 의기로 우리의 상상력 속에 화려하게 살아 움직이던 인물과 사건들은 피상적인 이해의 단순한 처리로 격하되고 지략을 더듬어 가는 재미는 싸구려 무협영화 수준의 활극으로 대치된 느낌이다. 시골 사랑방의 한담 속에서처럼 제갈공명은 여전히 한 요술꾼으로 나오고 관운장은 미덥잖은 신화로만 답습되고 있다.
하기야 영화는 아직 하편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우리가 본 상편도 그 원래 길이의 절반을 좀 넘을 정도의 분량이라고 한다. 따지고 들면 전체의 3분의1 남짓을 본 셈인데 그걸로 모처럼의 대작을 함부로 난도질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은 아무리 애써도 바로잡아지지 않는 법이다.
차라리 『삼국지 이전 편을 철저하게 사회주의적인 이해방식으로 영상화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모든 영웅들을 권력지향적인 반동엘리트로 파악하고 그들의 쟁투를 민중과 유리된 파워게임으로 싸늘하게 해석해 나갔더라면 적어도 새로운 맛은 느끼게 할 수 있었다.
아니면 원전의 고전적인 정신에 충실하되 큰 사건별로 편을 나누어 한편 한편을 사실성과 물량으로 압도해 나가는 방식도 생각해 볼만했다. 원산지가 배경이 되고 그 후예가 바로 출연한다는 데서 오는 선입견만으로도 지금처럼 원전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만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전을 못 읽은 젊은이들에게 이 영화가 『삼국지』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단정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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