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쳐모여" vs "리모델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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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열린우리당이 이른바 '범여권 새 틀 짜기'를 공식화하면서 진행 방향을 두고 계파 간 대치 전선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계개편 주도권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2005~2006년 재.보궐 선거에서 0대 40의 전패를 기록한 열린우리당에 과연 정계개편의 동력이 남아 있느냐는 따가운 시선이 당 안팎에 적지 않다.

29일 당 비대위는 "정계개편은 비대위를 중심으로 질서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정계개편이 공식화된 것이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천정배 의원이 "통합 신당을 추진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결국 당을 스스로 해체하고 각 정파들이 헤쳐 모여 새 간판을 올리는 '신당 창당론'이 정계개편의 핵심 어젠다가 돼 버렸다. 그 반대쪽엔 당을 중심으로 해서 정계개편을 논의하자는 '당 리모델링론'이 있다. 세력은 '신당 창당론' 쪽이 우세하다. 다만 신당 창당파들 사이에서 노 대통령의 참여를 놓고 주장이 엇갈린다.

◆ '열린우리 창당파' vs '친노 직계파'=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인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이 과거 민주당 분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신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이 과오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 한 명의 창당 주역인 정대철(사진) 상임고문도 가세했다. 그는 30일 라디오 방송에서 "열린우리당은 창당 목표였던 지역구도를 탈피하지도 못했고, 영남에서도 전혀 표가 오지 않아 꿩도 매도 모두 놓친 격이 됐다"며 "신당 창당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당파의 한 핵심인사는 "전통 지지자의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통합신당론이 앞으로 힘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통합이란 호남 세력과 민주당과의 연합을 말한다.

반대 편엔 친노 직계 그룹이 있다. 당내 계파인 참여정치실천연대나 의정연구센터에 소속돼 있는 의원들이다.

친노 직계 그룹은 통합신당론을 "지역주의 구도로의 회귀"라고 비판하고 있다. 신기남 의원은 창당 멤버지만 이 그룹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 사수파다. 의정연구센터의 백원우 의원은 30일 "열린우리당이 실패했다는 주장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지역정당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런 순간 대선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세 결집 움직임도 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는 최근 노사모 전.현직 인사들과 만나 "노사모의 시대적 소명이 남은 만큼 뭔가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15일 열린 경남 노사모 가을운동회에는 이광재.백원우 의원, 김두관 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이 참석했다. 이를 두고 정계개편을 대비한 친노그룹의 조직 재건작업이란 분석이 나왔다.

◆ '헤쳐 모여 신당'도 각론 달라=신당 창당파도 노 대통령의 참여냐, 배제냐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정대철 고문은 "노 대통령은 신당의 주역도 아니고 토론의 기본 의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9일 당 비대위 긴급회의에서 한 비대위원은 "대통령이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해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천정배 의원은 노 대통령의 참여를 주장했다. 그는 "노 대통령과 결별하는 방식으로는 신당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근태 의장도 "노 대통령의 탈당은 안 된다"고 한 바 있다.

일각에선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신당을 창당할 새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정식 의원을 비롯한 초선 23명 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이 공식적으로 이같이 주장한다. 중도 성향의 한 재선 의원은 "정동영.김근태.천정배씨 등이 모두 대통령 밑에서 일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정계개편을 주도하기 다소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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