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강공」소극적… 외로운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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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ㆍ불등 “쌍방 모두 피해”무력사용 망설여/미 국내여론도 강ㆍ온 두갈래로 안팎 시련
유엔안보이사회가 이라크의 경제적 제재를 위해 제한적이나마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결의했으나 미국을 제외한 각국들이 무력사용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미국이 외로운 입장에 처해있다. 소련의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유엔결의 직후 비록 소련이 유엔 결의에 찬성을 했으나 페르시아만에서 무력사용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고 유럽의 미국 우방들도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면서 부시대통령의 군사적 개입을 적극 지지했던 미국여론도 일부이기는 하나 진보ㆍ보수 양세력의 여론선도그룹을 중심으로 부시의 군사개입을 비판하고 나서 부시의 어려운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면서 영국 등 유럽서방국가들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보조를 맞추어 작은 규모이기는 하나 함정들을 현지에 파견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이나 해결하는 방법면에서 유럽은 미국과 판이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력사용이 불가피하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번 기회에 완전히 제거를 해야 세계가 조용해진다는 논리를 배후에 깔고 정책을 수립해 왔다.
반면 유럽국가들은 이번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군사적 충돌은 쌍방에 엄청난 피해만 가져올 뿐이라며 군사행동에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시각을 갖게 된데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유럽의 경우 쿠웨이트와 이라크원유에 미국보다 훨씬 더 의존해 있으며 무력면에서도 미국만이 이라크를 제압할 수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또 이번 사태를 선과 악의 싸움으로 규정해 악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논리에서 후세인을 궁지로 몰고 있으나 유럽국가들은 「쥐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아야 한다」는 좀더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유럽국가들은 미국의 신속하고도 엄청난 규모의 군사개입을 두려움과 걱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은 지난주 『우리는 지금 전쟁의 논리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영국의 허드 외무장관도 전쟁불가피론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미국과 가장 보조를 잘 맞추고 있는 영국까지도 미국의 무력대응 우선주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영국은 이라크의 또다른 침략과 유엔의 봉쇄를 실현할 정도의 군사력만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국제적인 외교적 압력으로 이라크를 굴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는 미국이 이번 사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할 경우 유럽의 지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와 함께 쿠웨이트를 재정복하는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미국이 가장 신경쓰는 나라는 소련이다.
소련은 유엔결의를 찬성하고도 무력개입을 거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미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미국이 고민하는 대목은 소련의 외교적 역할이다.
이라크와 소련이 맺고 있었던 「끈끈한 관계」때문에 미국이 강경해질수록 이라크는 소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상황때문에 외교적 돌파구가 소련으로부터 열릴지 모른다는 예감을 미국은 갖고 있다.
이 경우 무력대응을 선도했던 미국의 입장은 난처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부시대통령은 국내에서도 무력개입에 대한 비판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해 안팎으로 부담을 안게 됐다.
파병초기의 절대적 지지열기가 점차 식어가며 보수ㆍ혁신 양진영에서 각기 다른 논리로 부시의 무력개입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진보세력들은 미국의 파병을 『전형적인 제국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의 위협도 사라진 마당에 미국이 왜 세계의 십자군 역할을 떠맡느냐』며 신고립주의를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특히 유럽과 일본 등 걸프지역으로부터의 원유의존도가 미국보다 더 큰 국가들이 이번 사태에 소극적인데 대한 여론의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이번 개입의 대가로 미국이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이 과연 무엇이냐』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팎으로 몰리고 있는 부시대통령이기 때문에 미국이 앞으로 대화보다는 오히려 무력이라는 강공책을 쓰지 않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것 같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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