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잃은 땅(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반도의 중심부를 가로 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한강유역은 아득한 먼 옛날부터 우리 민족에게 아늑한 삶의 터전을 제공해 왔다.
오늘날 한강유역에서 수없이 발굴되고 있는 선사시대의 유물들을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울은 백성을 배불리 먹일 비옥하고 넓은 땅과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주는 천혜의 요새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축복받은 땅」이었다.
그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이 된 것은 1394년 10월28일(양력 11월29일)이었다.
따라서 오는 94년은 서울 철도 6백년을 맞는 해라 하여 서울시는 벌써부터 갖가지 기념행사 마련과 함께 도시환경 미화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계획이 남산 제모습 찾기다.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보기 흉한 대형 아파트들을 철거하고 군부대와 정보기관 등도 철수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시민들의 휴식처를 만들거나 전통문화를 익히는 장소로 새로이 단장할 모양이다. 우선 철책으로 둘러싸인 남산에 새로운 산책로를 여러개 만드는 것 만으로도 일단 시민들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그뿐 아니라 경복궁안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도 곧 내보내고 소실된 단각등을 복원,고궁전체를 일반에 완전 공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더구나 용산에 있는 미8군까지 머지 않아 이전하게 되면 서울의 공간은 갑자기 확트이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같은 부푼 꿈도 신문에 보도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지역의 인구집중 현상을 보고는 한낱 남가일몽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새삼 옛날 기록을 들먹여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1428년(세종 10년)의 서울 인구는 10만9천명이었으며 그후에도 20만명 안팎이 고작이었다.
조선왕조가 끝날무렵인 1910년에만 해도 25만명이던 것이 해방이 되던 45년에 85만명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6ㆍ25직전까지 1백50만명 미만이었던 인구가 불과 40년만에 1천만명이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서울의 인구집중도는 세계의 수도중 제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축복받은 땅」 서울은 결국 인재로 말미암아 그 축복을 잃어버린 땅이 되고 말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