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미혼모의 “벼랑”(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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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엄마ㆍ아빠가 알까봐 무서웠어요. 엉겁결에 애를 화장실로 들고가….』
21일오후 서울 남부경찰서 형사계 보호실.영아살해혐의로 붙잡혀온 여고생 미혼모 박모양(18ㆍ경기도 이천군)은 쇠창살에 기댄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두툼한 입술,볼록한 양볼,뭉실한 콧날의 여고3년생.
거무스레한 생김생김에 농촌의 순진함이 역력했다.
지난해 11월 유난히 차갑던 그날.
박양은 혼자 집을 보다 농기구를 빌리러온 동네 「오빠」에게 순결을 잃었다.
1월부터 그녀는 몸에 이상을 느꼈지만 그 누구에게 말할 엄두조차 낼수 없었다.
자꾸만 불어나는 배를 복대로 조여매고 헐렁한 옷차림으로 부모와 학교친구들의 눈을 속였다.
더이상 부모에게 감출수 없게되자 박양은 지난달 23일 방학과 함께 집을 나섰다.
서울 시흥동 봉제공장에 근무하는 두 언니를 찾아갔고 방학중 아르바이트 조건으로 봉제일을 시작했다.
18일밤 막내동생의 임신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두 언니가 외출한 사이 박양은 산기를 느꼈다.
혼자 기숙사방에서 20여분간의 진통끝에 여자아이를 낳았다.
두려움과 창피함을 이길수 없었다.
박양은 자신도 모르게 벽에 걸린 수건으로 애를 감싸 2층 화장실로 달려갔고 핏덩이는 물통에 버려졌다. 죄책감같은 것은 느낄 여유가 없었다.
지난해 보사부가 조사한 우리나라 미혼모는 1만3천여명으로 그중 3천5백여명이 10대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임신후 대처방법을 몰랐다」는 것이 었다.
고3미혼모의 얘기를 들으면서 죄가 밉다는 생각보다 박양의 잘못은 학교와 사회,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느낌이 앞서는 것 같았다.<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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