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에 철심 박고 뛰는 '鐵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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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중앙일보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정진구(40)씨는 '철인(鐵人)'이다. 42.195㎞를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고, 그의 척추에 박혀 있는 20㎝가 넘는 철심들과 강철 나사들이 그를 철인으로 만들었다.

정씨는 2001년 봄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돌개바람에 말려 추락했다. 의사에게서 "수술은 해 보겠지만 하반신 마비가 될 가능성이 크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1차 11시간, 2차 9시간이 걸린 마라톤 수술에서 의료진은 척추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신경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뭉개진 척추를 지탱하기 위해 철심 두개와 대형나사 8개가 필요했다. 가볍게 움직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1년여를 지내고 3차 수술을 끝낸 지난 가을 정씨는 재활을 시작했다.

누워만 있어 비대해진 몸집을 이끌고 운동장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난 뒤 몸 속 쇠붙이들이 그를 잡아당기고 옥죄어 와 사흘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해병대 시절 지옥훈련을 이겨냈던 의지로 하루에 한 바퀴씩 거리를 늘려갔다. 의사가 과도한 운동은 삼가라고 충고했지만 달리면서 느끼는 자신감과 행복감이 그를 달리기 중독자로 만들었다.

그 자신감으로 그는 에버랜드 사파리차 운전사로 취업했다. 그가 속한 용인 마라톤동호회 강원두(39)씨는 "엄청나게 뚱뚱한데다 허리는 S자로 휘어진 정씨가 지난 가을 느리지만 끈질기게 운동장을 뛰더니 지난 봄 하프코스를 완주해 놀랐다"고 말했다. 4백m로 시작한 그의 달리기는 꼭 1년 만인 올 중앙마라톤에서 1백배가 넘는 42.195㎞로 늘어나게 된다.

정씨는 최근 용인시 유방동에 아귀찜 식당을 개업해 본격적인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부인 전업순(37)씨는 "남편이 나이 마흔에 마라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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