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공무원 기강/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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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일 오전 과천 종합청사사내에서는 해괴한 「사건」이 벌어졌다.
권영각 건설부장관이 주재한 직원조회에서 참석한 직원 대부분이 장관훈시를 거부하고 집단퇴장을 한 것이다.
철도공무원등 특정직의 공무원들 사이에서 그동안 한두번 있었던 집단행동이 중앙정부에서 벌어진 사실은 오늘날 느슨해진 공무원 기강의 현주소를 가늠케한다는 점에서 여간 충격적이지 않다. 권장관은 이날 사실상 자신이 독자적으로 구상한 건설부 조직개편안을 설명하고자 조회를 소집했으나 직원들은 들을 가치조차 없다고 항명했다. 건설부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번 개편안이 내부적 의견수렴 절차가 생략됐다는 점에서 특히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나 이들의 불만저변에는 건설부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사고가 결여된채 당장에 자신들에게 닥칠 신분상의 변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개편안의 어떤 점이 어떻게 잘못됐다는 논리적인 반박없이 근 30년동안 그럭저럭 잘 굴러온 건설부를 이제와서 왜 공중분해하려 드느냐는 표피적인 저항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한편 이번 건설부 조직개편안은 스스로 불필요한 조직을 과감히 들어내겠다는 점에서 일단 평가되고 있으나 이같은 문제는 역시 건설부 차원이 아니라 정부조직을 전면 재조정하는 선에서 검토되어져야 한다.
그런 선행작업없이 어떤 업무를 다른 부처로 옮길때 과연 그것이 얼마나 개선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중앙재해대책본부를 내무부로 이관할 경우 홍수예방이 지금보다 얼마나 나아질 수 있으며,또 장관이 스스로 밝힌대로 집행업무를 둘러싼 각종 부조리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도 이번 개편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때 도로공사를 지방공무원에 맡길 경우 기존의 구조적 비리가 얼마나 척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날의 어처구니 없는 불상사는 그동안 특명사정반을 통해 공무원 기강확립을 서슬푸르게 추진해온 정부를 무참한 꼴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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