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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비행기 정비사가 화가로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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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주경야화(晝耕夜畵)'.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다.

윤병성(尹炳成.44)씨. 그는 밤에는 '화가'지만 낮에는 '직장인'이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내리 3년 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한 그는 지난해와 올해에는 특선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전문적인 화가가 아니다. 그의 직업은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공장관리부 차장이다. 회사에서 직원들의 노무관리와 후생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尹차장은 고교(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한 직후인 1978년 항공정비사로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입사 후 10년 동안 비행기 정비를 하면서도 중학교 때부터 가졌던 그림에 대한 열정을 접을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서예를 배웠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미술반에 들어갔지요.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직장을 잡을 수 있는 공고로 갔습니다."

공고를 다녔지만 밤에는 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몇년만 붓을 잡지 않으면 손이 굳어져 어려워진다. 그래서 尹차장은 직장에 다니면서 밤에는 화실을 찾았다. 서양화가인 고(故) 한상돈 화백을 2년간 사사했다. 낮에는 비행기를 정비하고, 밤에는 화실을 찾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주경야화' 생활 6년,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왔다. 84년 노동부가 주최한 '노동문화제'에 그림을 출품해 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수상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했다. 식사가 끝나자 고(故) 조중훈 한진 회장이 그를 회장실로 불렀다.

"趙회장께서 '어떻게 정비사가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느냐'고 물었습니다. 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말씀드렸죠."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확 달라졌다. 趙회장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공장 내 30여평의 빈 사무실이 화실로 바뀌었다. 출근해 항공기를 정비하기 위해 스패너를 잡던 손에는 붓이 들렸다.

趙회장은 "외국의 좋은 그림들도 봐야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며 유럽과 미국 박물관 견학도 시켜줬다. 尹차장은 출근해 자신의 작품도 그렸지만, 회사 안전 포스터나 환경미화용 그림도 그렸다. 그는 90년부터 미술대전에 그림을 출품했지만 아홉번이나 보기좋게 떨어졌다. 99년 그는 수리를 위해 조선소에 정박해 있는 선박을 그려 미술대전에 처음 입선했다.

"입선해 마음이 들떠 있던 2000년 1월이었습니다. 선배 화가가 전화를 했습니다. 신문에 난 아시아나항공의 광고 사진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항공기 앞부분을 아래에서 찍었는데, 구도가 정말 좋았습니다. 무릎을 딱 쳤죠. 항공기를 정비하면서 수년을 보았는데 그 구도를 그림 소재로 삼을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때부터 그는 항공기 동체를 소재로 삼았다. 항공기 그림으로 그는 4년 간 미술대전에서 입선과 특선을 차지했다. 올해 특선을 받은 그림도 '희망 그리고 비상(飛上)'이라는 작품이다. 막 이륙하려는 항공기 동체 앞부분과 그 앞을 날고 있는 종이 비행기를 통해 내일의 희망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99년에는 김해와 마산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2005년에는 배와 비행기만을 주제로 한 테마전을 열고 싶다고 했다.

"아내(정문숙.40)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영광은 없었을 것입니다. 퇴근하고 화실에 틀어박혀 새벽까지 그림만 그리는 '환쟁이'인 저를 격려하고 도와줬으니까요. 미술대전에 아홉번이나 떨어져 붓을 꺾으려 했을 때도 아내가 말렸죠."

그가 그리고 싶은 것은 '비상'이다. 날아다니는 모든 것은 그리고 싶다고 했다. 들녘의 종이비행기, 하늘로 차오르는 독수리, 코스모스 길 위의 고추잠자리…. 그에겐 소박한 꿈이 있다. 앞으로 10년 뒤 정년으로 회사를 떠나면 화실을 갖춘 미술관을 운영하고 싶은 것이다.

김동섭 기자<donki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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