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과목 과감히 줄여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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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는 고교생들의 과중한 학습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오는 95년까지 교과및 교과목 수를 크게 줄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는 문교부의 이러한 계획에 적극 찬성하면서 방침을 굳혔다면 그 계획을 95년까지 늦출 필요도 없다고 본다. 문교부는 4개 고교를 교육과정 개편 연구학교로 지정,실험을 거친 뒤 개편을 할 계획이나 이는 말만 실험일 뿐 실은 행정편의,대학측이나 고교 교사들의 반발을 고려한 시간벌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는 고교 교과목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며 그에따라 문교부도 여러 차례 그 축소방침을 밝힌 바 있다. 대학측이나 일부 고교 교사들의 불만,대학입시제도와의 관계,교과서 개편 등이 문교부로서는 걸림돌이겠으나 교과목의 통ㆍ폐합은 뒤로 미루더라도 필수과목의 축소를 통한 학습부담의 경감책은 내년도부터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가 가능하다고 본다.
내신성적등 관련되는 입시제도도 못바꿀 이유가 없다.
현재 고교 3년간의 교과목은 25∼26개나 되며 이에따라 고교생들이 지급받고 있는 교과서도 3년간 32권이나 된다. 3년간 학습시간은 일정한데 교과목과 교과서가 이렇게 많다 보면 그 학습내용이 수박 겉핥기식이 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또 취미와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과목을,그것도 깊이 없이 그저 지식암기 위주로 배우다 보니 학습부담과 심리적 부담만 늘 뿐 학생들이 공부에 도무지 흥미를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이치가 이렇게 뻔한데도 그동안 교과목 수가 계속 늘어온 것은 주로 대학의 학과 세분화,교원 수급계획,정치적 목적 등 고교교육 외적 요구 때문이었다.
문교부는 교과목의 증설이유를 고교만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학생들이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고른 교양과 지식을 지니게 하고 사회적응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해왔으나 그것이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음은 이제와서는 문교당국자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의 고교 교과목 수를 보아도 미국 9개,영국 12개,서독 9개,프랑스 14개 등 우리처럼 백화점식으로 교과목을 설정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학문은 갈수록 세분화되어 나누기에 따라서는 수천가지도 넘는다. 대학 학과도 계속 세분화되고 있다.
그러면 고교 교과목도 계속 늘어나야 한단 말인가. 고교교육은 고교교육으로서의 목적이 있고 대학교육은 대학교육으로서의 목적이 따로 있다. 고교교육이 단순히 대학교육의 축소판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고교생들의 가뜩이나 많은 학습부담,어깨를 짓누르는 입시부담을 덜어주고 기본적인 과목이라도 깊이있는 교육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문교부가 대학측의 이기적인 요구를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측의 요구는 필수과목은 줄이되 그 대신 선택과목을 늘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왕 학습부담을 줄여주고 깊이있고 학생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을 하려면 대학입시 필수과목의 대폭적인 축소도 단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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