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고르비이후 여론조사 각광(세계의 사회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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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인 지지율등 중요 뉴스거리로 다뤄/신뢰성 형편없지만 「개방」의 지표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정책에 따라 최근 소련에선 여론조사가 크게 각광받고 있다.
지난달 열렸던 제28차 소련공산당대회를 앞두고 당기관지 프라우다는 『소련국민중 공산당을 정치적으로 중요한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의 18%뿐』 이라고 상세한 여론조사결과를 게재,예전같으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소련 여론조사중에서 가장 빈번히 실시되는 것은 바로 정치지도자에 대한 평가 및 지지도 조사. 최근 한 여론조사는 『소련국민의 43%가 가장 신뢰하는 지도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장이며 고르바초프를 지지하는 사람은 19%에 불과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여론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비단 정치뿐이 아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가』『여성은 직장과 가정중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가』 등 시민생활을 주제로 한 여론조사도 빈번히 행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소련 신문ㆍ잡지ㆍTV 등 언론매체들은 여론조사를 중요한 뉴스거리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여론조사는 사회학연구의 일환으로 지난 60년대 이후 실시되기 시작했으나 브레즈네프 정권이 사회학자들을 탄압,그동안 여론조사에 의한 사회학 연구는 침체돼 있었다.
그러나 85년 고르바초프가 등장,글라스노스트(개방)를 기치로 내세우면서 국민의사 파악을 위해 여론조사의 효용성이 높아지면서 여론조사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소련의 가장 대표적 여론조사기관으로 그 공신력이 높은 전소 여론조사센터 소장인 사회학자 타치야나 자슬라프스카야씨(63ㆍ여)는 소련에서 여론조사가 각광받기 시작한 직접 계기로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정책을 지적한다.
소련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소련 사회학회장직을 맡고 있는 개혁파 사회학자인 자슬라프스카야씨는 여론조사는 앞일을 예측하기 힘든 소련의 개혁정책에서 마치 해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론조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현재 소련에는 앞서 얘기한 전소 여론조사센터 외에 수많은 여론조사기관이 있다.
당 기관,또는 공화국별로 독립 여론조사기관이 있으며 모스크바등 대도시에선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가 행해지고 있다.
신문ㆍ잡지 등은 독자적인 여론조사기구를 갖지 않고 여론조사기관에 의뢰,조사결과를 기사화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여론조사의 높은 효용성에도 불구,소련의 여론조사 활동역사가 짧기 때문에 잘못된 여론조사로부터 오는 부작용도 적지않다. 모름지기 여론조사에는 조사대상ㆍ조사시기ㆍ샘플링수 등을 분명히 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사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에서 나온 여론조사들을 보면 조사방법조차 표시돼 있지 않은 것이 수두룩하다. 한 예로 지난해 10월 소련의 인기높은 주간지 「논거와 사실」은 『인민대의원중 사하로프 박사가 최고인기』라고 인민대의원에 대한 인기도를 발표한 바 있으나 이것은 단순히 독자편지를 집계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조사대상자 선정방법도 선거인명부를 기초로 한 랜덤 샘플링(무작위추출)이 아니라 성ㆍ연령별 등 구성비에 따라 인위적으로 나누는 방법을 쓰고 있다.
더욱이 소련처럼 방대한 국토,엄청난 인구,다양한 민족 및 언어로 구성된 나라에 대한 여론조사를 일부 대도시 주민만을 상대로 실시하는 데에서 생기는 오차는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같은 미비점에도 불구,「여론조사의 처녀지」였던 소련에 국민의사의 정확한 반영을 위해 여론조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최근 그 유명한 독자부를 개편해 여론조사부를 신설,독립시킨 바 있다.
조작ㆍ통제된 여론만 있어온 소련사회에 여론조사가 이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소련이 개방사회로 변하고 있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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